[청사초롱] 마음도 늙는다
[청사초롱] 마음도 늙는다
장유승(성균관대 교수·한문학과)
입력2023.02.22. 오전 4:04
나이를 먹으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몸의 변화다. 흰머리만 늘어나면 다행이다. 머리가 빠진다. 얼굴에 주름이 늘어난다. 치아와 관절이 아프기 시작한다. 쉽게 피로를 느낀다. 노화의 대표적 증상이다. 이런 신체적 변화는 누구보다 당사자가 잘 안다. 기억력 감퇴를 비롯한 인지 기능 노화도 느끼기 쉬운 편이다. 반면 감정 변화는 자각하기 어렵다. 몸은 변해도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란 말이 나왔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믿음은 몸과 마음을 별개로 간주하는 ‘심신이원론’의 산물이다. 그 기원은 영혼불멸이다. 몸과 마음이 별개라는 믿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달래준다. 노화에 대한 두려움도 달래준다. 그러나 정신작용은 두뇌 활동 산물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금, 심신이원론은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그래도 몸과 마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온몸이 다 늙어도 마음만은 늙지 않는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몸이 늙으면 지적 기능은 감퇴하지만 마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감정 변화만큼은 피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들은 노화에 따른 감정 변화의 대표적 증상으로 두 가지를 거론했다.
첫째는 욕심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청년기에는 성욕을 경계하고 장년기에는 권력욕을 경계하고 노년기에는 물욕을 경계해야 한다.”
늙으면 성욕이나 권력욕은 약해지는 반면 물욕은 강해진다는 말이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욕구도 강하지만 욕구를 억제하는 힘도 강하다. 혈기는 욕구의 원천이면서 욕구를 억제하는 도덕적 의지의 원천이기도 하다.
송시열은 사람이 젊을 땐 혈기가 강해 의욕적으로 의리를 실천하지만, 혈기가 쇠하면 의욕은 사라지고 그저 먹고살 생각과 처자 걱정뿐이라 했다.
다산 정약용의 설명은 더 구체적이다. 사람은 혈기가 부족하면 보충하려는 본능이 있는데, 노인은 부족한 혈기를 보충하고자 음식이나 재물에 더욱 연연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감수성이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말했다.
“사람 마음은 늙을수록 슬퍼지기 쉽다.”
송나라 문인 구양수도 말했다.
“늙고 병든 사람은 유난히 감정을 쉽게 느끼고 눈물이 많다.”
조선 사람들이 떠받든 주자도 늙으면 감수성이 예민해진다고 말했다. 주자 열성팬이었던 우암 송시열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늙어서 감수성이 예민한 탓에 시를 읽을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편지를 받을 때마다 눈물이 흐르니 늙으면 감동하기 쉬워서인지 죽을 날이 가까워서인지 모르겠다.”
늘그막에 접어든 송시열의 감수성을 심하게 자극한 것은 이별과 죽음이었다. 이별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노년의 이별은 언제 사별이 될지 알 수 없다. 결국 노인의 예민한 감수성은 죽음을 의식한 결과라고 하겠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다. 신체적 변화는 심리적 변화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몸의 노화를 피할 수 없다면 마음의 노화도 피할 수 없다. 마음은 성숙해질 뿐 늙지 않는다는 믿음은 젊은이를 동등한 인격적 존재가 아닌 미숙한 존재로 치부하는 편견을 낳는다. 아울러 노인도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감정과 욕구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게끔 한다. 자칫 노년의 심리적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시대다. 노화에 따른 몸의 변화를 인정하고 익숙해져야 하는 것처럼 마음의 변화도 인정하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늙을수록 욕심이 많아지고 감수성이 예민해진다는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주장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는 마찬가지다. 도덕적 타락과 감정 기복을 주의해야 한다는 당부는 여전히 유효하다.
장유승(성균관대 교수·한문학과)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