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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옛날 사진의 한편(2-2)

by 까망잉크 2008. 4. 17.
흥인지문(興仁之門 ; 동대문)서울 종로6가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문. 적을 막기 위해 반원형의 평면을 이룬 옹성(甕城)을 쌓았다. 1869년에 대대적으로 개축해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사진 왼쪽에 전차표 판매소가 보인다.

 

돈의문(敦義門 ; 서대문)서울 신문로2가에 있던 조선시대 서울의 4대문 중 하나. 경희궁터에서 독립문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1915년 일제가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 확장을 이유로 철거해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한강철교서울의 용산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철도교. 1899년 9월 노량진과 인천 사이 경인선이 개통된 뒤 1900년 7월 한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철교가 완성되었다. 경인선 부설권은 애초 미국인이 가지고 있었는데 일본이 이를 인수하여 완성한 것이다. 한강철교는 너비 약 5.1m, 높이 약 11.3m, 길이 약 630m로 경인선 부설 공사 중 최대 난공사였다. 현재의 철교는 한국전쟁 중 파괴된 것을 복구한 것이다.
독립문서울 현저동에 있는 대한제국 시기의 석조문으로 높이 14.28m, 너비 11.48m다. 독립협회의 발기로 1년간의 공사를 거쳐 1897년 11월20일 완공되었다. 1980년 1월 고가도로가 나면서 이전돼 현재는 원위치에서 서북쪽 70m 떨어진 곳에 있다.
 
원각사지(圓覺寺址) 십층석탑탑골공원에 있는 조선시대 석탑. 높이 12m. 국보 제2호. 탑골공원 자리는 조선 초기 원각사라는 큰 사찰이 있던 곳이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 형태가 특수하고 화려함과 기교에 있어 조선시대의 석탑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원각사비탑골공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 1471년에 건립된 것으로 높이 4.9m, 비신(碑身) 너비 1.3m이다. 보물 제3호. 귀부(龜趺)는 화강암, 비신은 대리석이다. 탑골공원에서 놀던 아이들이 사진의 모델이 되었다.
노량진 도선노들나루라고 불린 노량진은 서울과 과천·시흥을 연결해 충청도와 전라도로 나가는 길목이었다. 1910년대 인도교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배를 이용해 한강을 건너야 했다
한강에서 얼음 깨고 낚시추운 겨울, 한강이 얼면 강태공들은 한강에 나가 빙판에 구멍을 뚫고 낚시를 했다. 한 가족일까, 손에 쥔 물고기를 보며 흐뭇해하는 모습이 낚시가 이들의 생업임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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