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종인의 땅의 歷史48

문맹률 90%의 나라에서 문화 강국 대한민국으로[박종인의 땅의 歷史] 문맹률 90%의 나라에서 문화 강국 대한민국으로[박종인의 땅의 歷史] 344. 공화국 대한민국③ 까막눈 조선인이 문화를 창조하기까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3.05.24. 03:00업데이트 2023.05.24. 06:14 언문 즉 한글을 멸시하고 한문에 집착한 지식인들 탓에 조선 백성은 500년 내내 까막눈 신세를 면치 못했다. 10명 중 9명은 까막눈이었던 조선은 식민시대 종료 후 문맹률 80%에 이르는 문맹국으로 해방을 맞았다. 1948년 치러진 선거는 까막눈을 위해 이름과 함께 ‘작대기’로 입후보자 이름을 표시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3년 ‘문맹국민 완전퇴치 계획’을 세우고 5년 동안 민관합동으로 성인 한글교육을 실시했다. 1958년 말 대한민국 문맹률은 4.1%로 급감했다. 교육은 문화적 .. 2023. 5. 24.
소련 꼭두각시 김일성이 농락한 대한민국 건국[박종인의 땅의 歷史] 소련 꼭두각시 김일성이 농락한 대한민국 건국[박종인의 땅의 歷史] 343. 공화국 대한민국② 김일성을 조종한 소련 군사위원 스티코프의 일기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3.05.17. 03:00업데이트 2023.05.17. 06:11 1946년 3월 20일 서울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다. 미국측 수석대표는 하지 중장(앞줄 맨 왼쪽), 소련측 수석대표는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 군사위원 스티코프 중장(하지 오른쪽 외투).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설계도는 김일성이 아니라 스티코프가 만들었다. 스티코프가 쓴 일기에 따르면 소련군 대위 김일성은 일거수일투족을 스티코프로부터 지시받았다. 김일성은 완벽한 꼭두각시였다. /국사편찬위 * 유튜브 https://youtu.be/tUJmTfDJ9z.. 2023. 5. 17.
우리는 조선을 뛰어넘은 대한민국이다 우리는 조선을 뛰어넘은 대한민국이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입력2023.05.10. 오전 3:04 수정2023.05.10. 오전 9:10 342. 공화국 대한민국① 봉건 조선에 없던 대한민국 풍경들 * 유튜브 https://youtu.be/4DTLuaHGWeg 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식민시대인 1926년 경복궁 앞에 세워진 조선총독부 청사는 해방 후 건국을 선포한 중앙청으로 사용됐다. 전쟁으로 파괴됐던 중앙청은 훗날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철거됐다. 그 사이 이 땅에는 봉건 왕조와 식민시대가 지나고 공화국시대가 도래했다. 경복궁에는 대한민국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시간을 즐긴다. 부국와 강병으로 부활한 근대 공화국, 대한민국시대다./박종인기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 2023. 5. 10.
[박종인의 땅의 歷史] “역적 처벌 위해 참수형 부활”...독립협회 해산과 공포의 3년 “역적 처벌 위해 참수형 부활”...독립협회 해산과 공포의 3년 [박종인의 땅의 歷史] 입력2023.04.12. 오전 3:04 수정2023.04.12. 오전 8:11 340. 근대로 가는 길목⑤ 대한제국 광무제 고종은 권력 장악을 위해 근대를 포기하고 정치 파트너였던 독립협회를 강제로 와해시켰다. 개혁세력은 권력 분산을 통해 근대국가 건설을 꿈꿨지만 고종은 1899년 권력을 황제에 집중시킨 ‘대한국 국제’를 통해 반근대적 입법독재를 완성했다. 이듬해 1900년 고종은 갑오개혁 때 폐지했던 참수형을 부활시키고 이를 국사범에게 적용하겠다고 선언했다. 10년 뒤 대한제국은 식민지로 전락했다. 독립협회가 야심차게 건설했던 독립문은 일본 사진엽서에 ‘도쿠리추몬’이라는 볼거리로 전락했다./부산광역시립박물관 유튜브 .. 2023. 4. 12.
[박종인의 땅의 歷史]“향후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화하기로 결정한다” “향후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화하기로 결정한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입력2023.03.29. 오전 3:03 수정2023.03.29. 오전 4:05 338. 근대로 가는 길목④ 조선 식민지 정책이 결정된 1894년 8월 17일 일본내각회의 경복궁 동쪽 문인 건춘문(建春門). 1894년 7월 23일 새벽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출병한 일본군 혼성여단이 건춘문과 서쪽 영추문(迎秋門)을 부수고 경복궁을 공격했다.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던 경복궁 수비대는 고종 명에 의해 무장해제하고 퇴각했다. 이틀 뒤 일본이 아산 풍도 앞바다에서 청나라 군함을 공격하며 청일전쟁이 시작됐다. 운명의 8월 17일 일본 내각은 조선 문제 처리를 안건으로 올리고 독립국화, 보호국화, 분단화, 중립화 4개안 가운데 보호국화를 향후 대조선.. 2023. 4. 1.
“김옥균이 죽었다고 역적 허리와 목을 그냥 붙여두겠는가” “김옥균이 죽었다고 역적 허리와 목을 그냥 붙여두겠는가”[박종인의 땅의 歷史] 입력2023.03.22. 오전 3:04 337. 근대로 가는 길목③ 김옥균의 끔찍한 처형 충청남도 아산에 김옥균 무덤이 있다. 도로명 주소 또한 김옥균 호를 따서 고균길이다. 1912년 당시 아산군수였던 양자 김영진이 일본에 있던 김옥균 묘에서 머리카락을 가져와 이장한 묘다. 1894년 상해에서 암살된 뒤 조선으로 끌려온 김옥균 시신은 4월 14일 밤 온몸을 토막내고 칼집을 내는 부관참시와 능지처참형을 받고 팔도에 뿌려졌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10년째 감옥에 갇혀 있던 아버지 김병태는 아들 시신이 추가형을 받은 다음날 천안 감옥서에서 처형됐다. 역적이 죽은 뒤 그 시신에 처벌을 가하는 ‘역률 추시’는 영조 때, 가족을 .. 2023.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