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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비녀

by 까망잉크 2008. 5. 7.
 

  

    
   
    

 

비  녀 

여인들이 머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장신구이다. 대개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뒤통수에서 땋은 머리를 둥글게 말아 올리고 비녀를 꽂는 쪽머리에 많이 사용되었다.
어릴적 거울 앞에서 쪽찐머리를 매만지며 비녀를 꽂으시던 할머니가 그립다.  위 오른쪽 봉황 머리 큰 비녀는 여인들이 혼례용으로 사용하던 장신구이다.
 


<유래 및 발달과정>

홍봉한(洪鳳漢, 1713-1778) 등의『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단군이 나랏사람들에게 편발하고 개수(蓋首)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하는데, 비녀도 이때부터 발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흥덕왕 복식금제에 차(釵)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비녀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녀자의 머리 모양은 고대 이후 고려시대까지 별다름이 없어 고려의 여인들도 머리에 작은 비녀를 꽂았다. 조선중기에는 가체에 의한 얹은머리가 유행하였다. 얹은머리에도 비녀가 사용되었고 궁중 의식용인 큰머리, 대수, 궁중 및 반가 예장용인 어여머리 등에도 비녀를 사용하여 가체를 고정시켰다. 얹은머리 장식의 사치가 날로 심해지고 그에 따른 폐단이 많게 되자 영조, 정조 때의 발제개혁(髮制改革)과 더불어 이에 대한 금령이 여러차례 있었다. 순조 중엽에 와서는 얹은머리대신 쪽찐머리가 일반화되면서 비녀가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얹은 머리의 가체에 치중하였던 사치가 점차 비녀로 옮겨지면서 그 종류가 다양해졌고 기교도 발달하여 당시의 공예미술을 대표하는 것의 하나가 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비녀는 재료와 머리의 장식에 따라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비녀는 금, 은, 백동, 놋, 진주, 옥, 비취, 산호, 나무, 대나무, 뿔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였다. 머리 부분의 장식에 따라 봉잠, 용잠, 매죽잠, 죽잠, 석류잠, 국화잠, 민잠, 말뚝잠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계급사회에서는 존비, 귀천, 상하의 차별이 심하였으므로, 금은주옥(金銀珠玉) 등 귀중한 재료로 만든 비녀는 상류계급에서 사용하였고 서민계급의 부녀자는 나무, 뿔, 뼈 등으로 만든 비녀를 사용하였다. 또한 잠두의 수식(修飾)에 있어서도 크게 차이가 있었다. 잠두의 형태는 대부분 길상적(吉祥的)인 것으로 부귀, 장수, 다남(多男)을 기원하는 것들이다.

본 박물관의 이 유물은 백옥으로 만든 것으로 비녀 중간에는 은판을 대고 수리했으며 머리는 매화를 투각 장식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비녀(한국정신문화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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