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역사) 이야기

망부석(望夫石) 설화

by 까망잉크 2009. 6. 22.

 

 

  망부석(望夫石) 설화

 

 

신라 초기 내물왕이 즉위한지 36년. 경인(庚寅, 390 A.D)에 일본이 사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앞으로 침략하지 않는다는 표징으로 왕자 한 사람을 보내어 달라고 하므로, 셋째 아들 미해(美海)를 보냈더니 돌려보내지 않았다.

 

또한, 눌지왕 때에는 고구려가 화친한다는 이름 아래 왕자 보해(寶海)를 보내 달라고 하므로 부득이 하여 눈물을 머금고 보냈더니, 역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에 눌지왕은 아우 둘을 남의 나라에 두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이를 안 박제상은 고구려로 가서 보해를 구해냈다. 다시 일본으로 왕의 동생 미사흔(未斯欣)을 데리러 간 박제상(朴堤上)이 왕자를 구출했지만 자신은 돌아오지 못했다.

 

왜왕에게 환심을 산 후 미해를 신라로 귀국시킨 박제상은 결국 붙잡혀 고문을 당하게 되었다. 이 때 왜왕이 박제상에게 미해를 빼돌린 이유를 묻자 제상은 자신은 신라의 신하지 왜왕의 신하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자, 왜왕은 왜국의 신하라 한다면 상을 주겠다고 하자, 제상은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벼슬과 녹은 받지 않겠다고 거절한다.  

 

제상은 왜왕에게 다리 가죽을 벗기고 갈대 위를 걷는 형벌, 뜨거운 쇠 위에 세워놓은 형벌 등을 받고, 결국은 불태워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아내가 자녀를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 일본을 바라보며 박제상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 뒤에 사람들은 그녀를 치술령의 신모(神母)로 모시고, 이를 소재로 지은 노래가 '치술령곡'이다.

 

 

그대로 천년사랑 

 

가신 뒤 날 잊었나
야속한 서운함에
잊은 듯
못 잊으니
 
구태여 잊으리까
안으로
속 깊은 사랑
붉은 마음 어이리
 
그대를 기다림이
망부석 닮았거나
길가에 묵은 등걸
상사목 될지라도
 
언제나
그냥 그대로
천 년 사랑 변할까 
 
= 雲谷 강장원 =

 

'옛(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라 선덕여왕  (0) 2009.06.27
6.25 특집 ....  (0) 2009.06.25
원효대사 이야기  (0) 2009.06.16
태조 이성계의 秘話 #3  (0) 2009.06.11
나눌 줄 모르는 풍요는 탐욕이다.  (0) 2009.06.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