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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by 까망잉크 2009. 11. 11.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속담에 “호랑이는 하루에 천 리를 간다” 하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다.

 

강릉(江陵) 대화(大和)에 사는 농민이 한여름 풀 벨 철에, 다음 날 인부들을 모아 풀을 베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밤에 술을 거르다가 마시고 취하여 방문 밖에서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호랑이가 지붕을 넘어 들어와서 업고 갔다. 그는 횡성(橫城)에 이르러서야 정신이 들었지만 어찌할 수 없어 일단 호랑이가 가는 대로 맡겨 두었다. 횡성 읍내의 닭들이 시끄럽게 울어대자, 호랑이는 닭 울음소리를 싫어하여 더욱 빨리 달렸다. 원주(原州)를 지나자 닭이 세 번째 울었다. - 내가 상상해 보건대 호랑이 등에 탄 사람은 눈앞에 별빛이 띠를 이뤄 아른거리고, 귓가에 이는 바람은 화살 소리 같았을 것이다. -

 

곧장 안창(安昌)을 지나 석지령(石地嶺)을 넘어가니, 이곳은 농민이 잘 아는 길이라서 눈에 선하였지만 계속 죽은 체하고 호랑이 등에 붙어 있었다.
여주(驪州)에 이르자 강가의 하늘이 새려고 하였다. 호랑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강물을 가로질러 영릉(寧陵)으로 들어가 앵봉(鶯峰)에 올라갔다. - 호랑이의 행로를 낱낱이 서술하여 산군(山君)의 기거주(起居注)가 될 만하니, 천하의 훌륭한 문장이다. -

                                                                                                                                      

 

그리고 사람을 낭떠러지에 내려놓고는 굴 앞에서 신호하자 새끼 두 마리가 나왔다. 호랑이는 새끼들을 핥아 주고 젖을 먹이고는 잡아 온 사람을 앞발로 치며 장난하여 생피를 새끼에게 먹이려고 하였으나, 새끼들은 먹을 줄을 몰랐다. 호랑이는 지쳐 조금 쉬려고 잡아 온 사람을 놓아둔 채 두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죽은 체하고 있던 농민은 갑자기 일어나서 새끼들을 때려죽이고, 높은 나무로 올라가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허리띠를 풀어 자신을 나무에 꽁꽁 묶고 호랑이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에 암수 호랑이가 서로 이끌고 침을 흘리면서 왔으니, 함께 잡아먹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새끼들은 다 죽었고, 잡아 온 사람도 없었다. 두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포효하니 온 산이 찢어질 듯했다. 호랑이는 고개를 들어 사람이 나무 꼭대기에 있는 것을 보고는 뛰어올랐지만 두세 번 뛰자 점점 힘이 빠져 갔다. 때마침 나무꾼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자, 호랑이는 피해서 가 버렸다.


대화에서 영릉까지 거리가 400리가 넘는데 호랑이가 하룻밤에 왕래하였으니, 하루에 천 리를 못 가겠는가.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살아날 수 있는데 하물며 다른 경우이겠는가.

내가 《호회(虎薈)》를 읽어 보았으나 이처럼 훌륭한 문장은 없었다.


 

[주B-001]성언(醒言) : 사람을 깨우치는 말이란 뜻으로, 총 3권에 인물평 및 일화, 사론(史論), 필기(筆記), 한문단편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주D-001]기거주(起居注) : 제왕의 언행을 일일이 기록하던 벼슬아치 또는 그런 글을 말한다.

 

성대중(成大中)의 청성잡기 제3권 > 성언(醒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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