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펀드
70년 '안정성장 1월호' 출시, 가입자 장사진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어느 봄날 오후. 서울 을지로 쌍용빌딩 9층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투자신탁업무를 할 수 있었던 ‘한국투자개발공사’가 국내 최초로 출시한 펀드상품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이었다. 한국투자공사 설립 멤버였던 윤안홍(68)씨는 “펀드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라 직원들의 가족, 친구들이 대부분 가입했다”며 “예상외로 가입 첫날에 모집금액 1억원을 다 채우게 되자 가입을 못하게 된 사람들이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전했다.
1억원 규모로 모집한 대한민국 최초의 펀드는 이렇게 출발했다. 첫 펀드 이름은 ‘안정성장 1월호’. 1970년 5월 20일 탄생했다. 출범 당시 이름은 ‘증권투자신탁’이었는데, ‘펀드’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여서 출시된 지 6년 뒤인 1976년 1월 21일 ‘안정성장 1월호’로 개명했다.
이 펀드는 1997년 2월 기네스협회로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펀드로 공인〈사진〉받았다. 한때 사실상 운용이 중단되면서 존폐의 기로에 서기도 했지만 한국투자공사의 후신인 하나UBS자산운용을 통해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펀드 규모는 약 200억원 수준이며 누적수익률은 약 430%를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가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던 1960년대 중반, 우리 기업들은 외국이나 국내 은행에서 돈을 빌려다 사업을 해야 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967년 당시 기업들이 주식 발행 등으로 자금을 직접 조달한 비율은 22.4%였던 데 반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이자를 주고 빌려다 쓴 자금 비율은 41.3%였다. 기업들이 이자 부담 때문에 추가 투자를 하기 어려운 구조였던 것이다.
정부는 1968년 11월 펀드 도입 등을 통한 증권시장 활성화를 위해‘자본시장육성에관한법률’을 제정했다. 다음 달엔 펀드 운용업무 등을 담당하는 ‘한국투자개발공사’(1972년 한국투자공사로 개명)가 발족했고, 1974년엔 한국투자신탁(현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이 설립되면서 펀드 시장도 경쟁구도로 재편됐다.
이렇게 시작된 펀드 시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새로운 펀드가 출시될 때마다 투신사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는 등 호황을 이뤘다. 1980년 100을 기준으로 출발한 코스피지수가 1989년 3월 1000을 돌파, 이 기간에 주식형 펀드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10배 전후의 수익을 냈던 것이다.
1989년 중반부터 증시가 급락하면서 펀드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고, 당시 정부의 요구로 고객들의 손실을 떠안게 된 투신사들은 급기야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1990년대 말까지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펀드는 2000년대 들어 다시 전성기를 맞았으나, 지난번 글로벌 금융위기로 펀드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면서 인기가 주춤해졌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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