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역사) 이야기

[스크랩] 함흥 차사

by 까망잉크 2010. 5. 29.

편지제목: 함흥차사 / 2007-02-27 10:28:03

 


조선조 태조 이성계(李成桂) 그의 아들 태종이
형제들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사이가 나빠져서
함흥으로 내려가 버렸다.

태종이 문안 사자를 보내면 태조가 죽여 버리는지라,
문안사(問安使) 를 보내고 싶어도
가고자 하는 자가 없었다.

이때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를 지낸 박순이
자기가 가겠노라고 스스로 나섰다.
박순은 사자의 수레를 타지 않고
새끼가 딸린 어미 말을 타고 갔다.

저 멀리 행재소(行在所)가 보이자, 박순은
말에서 내려 망아지를 길가에 매어 놓고,
어미 말만 끌고 태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어미 말과 망아지는
서로를 돌아다보면서 애처롭게 우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태조는 박순에게 물었다.

“저 말이 왜 저리 슬피 우는 것이냐?”
“비록 미물이지만 모자의 정이 지극하여 그러는 모양입니다.”

태조는 박순의 대답을 듣고
가슴 한구석이 찔리는 데가 있었다.
‘내가 짐승만도 못하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박순이 태조를 모시고 바둑을 두는데
천정에서 쥐 한 마리가 새끼를 물고 떨어졌다.
그 쥐를 때려잡는데,

어미 쥐는 자기가 죽게 될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끝까지 새끼를 놓지 않았다.
이것을 보고 있던 박순은 바둑판을 밀어 놓고
태조 앞에 엎드려 울며 간곡히 아뢰었다.

“한낱 미물들도 저렇거늘 전하께서는
어찌 이렇게 떨어져 지내신단 말씀입니까?”
박순의 간절한 말에 태조의 굳었던 마음이 움직였다.
“서울로 돌아가겠노라.”
태조는 마침내 약속을 하였다.

박순이 하직하고 서울로 돌아가는데,
태조를 모시고 있던 신하들이 유독
박순 만을 살려 보내는 데 반발하여
그를 죽여야 한다고 완강히 청하는 것이었다.

태조는 신하들의 강력한 요청에 할 수없이 말했다.
“그럼 만약 그가 용흥강을 이미 건넜으면
그냥 돌아오고, 건너지 못했으면 베어버려라.”
태조는 나름대로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그는 뒤쫓는 신하가 용흥강에 닿았을 때는
박순이 이미 강을 건넜을 것으로 믿고,
이렇게 마지못해 분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박순은 막 배에 오르려는 찰나
허리에 칼을 맞고 쓰러졌다.

태조는 통곡하며 부르짖었다.
“박순은 좋은 친구였는데 내가 그를 죽였구나!
그와의 약속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리라”




- 이 창 범(수필가) -


"); makeEmbed(""); makeEmbed(""); makeEmbed(""); makeEmbed(""); makeEmbed("

 

 


출처 : 산과 우정
글쓴이 : 승우 원글보기
메모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