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엔 첫째로 얼골이 중요…" 70년 전에도 유행
1920~1930년대 조선일보는 한국인의 근대적 생활양식이 꽃피기 시작하던 당시 사회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습니다. 일제의 지배로 고통받았던 시대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버스·택시 운행이 시작되고 영화관·백화점·골프장이 탄생한 이 시기 한국인의 삶의 명암을 당시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살펴보는 연재물을 매주 화·목요일 게재합니다.우리나라에서 성형외과가 병원의 전문 진료과목으로 정부의 인정을 받은 건 1973년이지만, 예뻐지기 위한 '코 높이기 수술'은 80여 년 전에도 이 땅에 있었다. 조선일보는 1927년 5월 15일자부터 20일자까지 당시 병원에서 행해졌던 '코 높이기 수술'을 소개한 특집기사를 연재했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나진(낮은) 코를 인공으로 높이는 이야기'. 부제는 '높기만 하다고 어여쁜 건 아니다. 얼굴에 조화가 되면 그만'이라고 붙였다.
물론 요즘과 달리 소수 상류층에만 해당된 이야기였겠지만, 경성시내에 인력거와 소달구지가 굴러다니던 때에도 병원에서 콧날을 수술로 오똑하게 세워줬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 시리즈 기사의 앞머리에는 "조선의 의사들 사이에서도 '융비술(隆鼻術)은 다 무언고. 별 장난들 다 하지'하고 비웃는 처지"라며 의료계에서 미용 성형에 대한 거부감이 컸음을 전한다. 그러면서도 "서양 사람처럼 코를 오똑하게 만들어야 반드시 얼굴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은 아니지만 (코를 높이면) 얼굴 전체가 이지적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며 성형수술의 필요성을 은근히 부각시켰다.
- ▲ 조선일보 1927년 5월 15일자에 실린 '코 높이기 수술' 소개 시리즈 첫 회.
1937년에 이르면 아예 신문 제목에 '요새 흔히 있는 코 수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7월 3일자 이 기사는 "지금 세상에 출세를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첫째 얼골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니 이것은 진실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일"이라고 썼다. 당시에도 외모지상주의가 만만찮았던 것이다.
물론 초기의 성형수술은 완전하지 않았다. 맞선 볼 때 높여놓은 코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주저앉는 바람에 혼인을 앞두고 파혼당한 처녀의 웃지 못할 일화를 다룬 기사도 사회면을 차지했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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