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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 높이기 수술

by 까망잉크 2011. 2. 22.

[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1] 코 높이기 수술

  • 김명환 사료연구실장

"출세엔 첫째로 얼골이 중요…" 70년 전에도 유행

1920~1930년대 조선일보한국인의 근대적 생활양식이 꽃피기 시작하던 당시 사회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습니다. 일제의 지배로 고통받았던 시대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버스·택시 운행이 시작되고 영화관·백화점·골프장이 탄생한 이 시기 한국인의 삶의 명암을 당시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살펴보는 연재물을 매주 화·목요일 게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성형외과가 병원의 전문 진료과목으로 정부의 인정을 받은 건 1973년이지만, 예뻐지기 위한 '코 높이기 수술'은 80여 년 전에도 이 땅에 있었다. 조선일보는 1927년 5월 15일자부터 20일자까지 당시 병원에서 행해졌던 '코 높이기 수술'을 소개한 특집기사를 연재했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나진(낮은) 코를 인공으로 높이는 이야기'. 부제는 '높기만 하다고 어여쁜 건 아니다. 얼굴에 조화가 되면 그만'이라고 붙였다.

물론 요즘과 달리 소수 상류층에만 해당된 이야기였겠지만, 경성시내에 인력거와 소달구지가 굴러다니던 때에도 병원에서 콧날을 수술로 오똑하게 세워줬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 시리즈 기사의 앞머리에는 "조선의 의사들 사이에서도 '융비술(隆鼻術)은 다 무언고. 별 장난들 다 하지'하고 비웃는 처지"라며 의료계에서 미용 성형에 대한 거부감이 컸음을 전한다. 그러면서도 "서양 사람처럼 코를 오똑하게 만들어야 반드시 얼굴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은 아니지만 (코를 높이면) 얼굴 전체가 이지적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며 성형수술의 필요성을 은근히 부각시켰다.

조선일보 1927년 5월 15일자에 실린 '코 높이기 수술' 소개 시리즈 첫 회.
요즘처럼 간편한 실리콘 보형물이 개발되기 전이어서 당시의 코 높이기는 어려움이 컸다. 이 기사는 파라핀 주입술은 부작용이 많고, 자기 늑골에서 연골을 떼어 이식하는 방법은 몸에 흠집이 나기 때문에 코끼리 상아(象牙)를 조각해 코에 삽입하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상아를 이용한 코 높이기 수술은 15분 내지 30분 동안에 마치게 된다고 소개했다. 성형 부작용을 둘러싼 분쟁도 이때부터 이미 있었다. 1933년 12월 16일자 조선일보에는 "코를 높게 이쁘게 하려다가 도리여 비뚜러지게 하였다 하여 치료비를 되내여라, 위자료를 배상해 내라고 의사에게 요구하는 일도 있습니다"라는 기사가 보인다.

1937년에 이르면 아예 신문 제목에 '요새 흔히 있는 코 수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7월 3일자 이 기사는 "지금 세상에 출세를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첫째 얼골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니 이것은 진실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일"이라고 썼다. 당시에도 외모지상주의가 만만찮았던 것이다.

물론 초기의 성형수술은 완전하지 않았다. 맞선 볼 때 높여놓은 코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주저앉는 바람에 혼인을 앞두고 파혼당한 처녀의 웃지 못할 일화를 다룬 기사도 사회면을 차지했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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