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32] "입으나 마나 한 옷 입고… 해수욕장은 타락의 공간"
- ▲ 새로운 수영복을 소개한 조선일보 1933년 6월 5일자 가정·아동면. 당시 해수욕복 모델들은 이처럼 뒤돌아선 포즈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 해수욕장이란 소수 부유층의 공간이었다. 일본제 여자용 해수욕복 1벌 값이 40원(약 80만원)이나 했다. 신문도 해수욕에 과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해수욕장 소개 기사엔 "조선 여자로서 해수욕장에 가는 측은 대개 밀매음 기생녀, 학생 중에도 그 정체를 모를 측"(1931년 7월 3일자)이라고 썼다. 1923년엔 충남 보령군수가 웅천면(熊川面) 무창포 해수욕장을 만들기 위한 진입로 공사에 농민들을 동원하려 하자 농민들이 "해수욕장은 인민에게 아무 이익이 없는 일"이라며 집단 반발해 1400명이 군수에게 보내는 항의성 진정서에 도장을 찍은 사건도 있었다.(1923년 4월 10일자)
초창기 해수욕장 풍경에서 오늘날과 가장 다른 것은 수영복, 특히 여자용 수영복의 모양이다. 당시 조선일보에 보도된 여자용 '해수욕복' 사진들은 반바지 같은 하의에 반팔 상의를 입는 평상복 스타일이 많다. 속옷 느낌이 아니라 겉옷 같은 수영복이었다. 얼마나 옷감이 많이 들어갔는지 "헌 여자 해수욕복 하의로 어린이 잠방이(가랑이가 짧은 한복)를 만들고, 상의는 어린이용 블라우스를 만드세요'라는 기사가 '생활의 지혜'로 소개되기도 했다.(1940년 7월 9일자)
'모던 뽀이' '모던 걸'들에게 해수욕장은 욕망의 해방구였지만 보수적인 어른들에게는 천하에 위험한 공간이었다. 조선일보 기사엔 "피서라는 것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의 노릇…미쳐 날뛰는 푸른 바다에, 입으나 마나 한 해수욕복을 입고서 물과 싸우는 것"(1931년 7월 3일자)이라는 표현도 있다. 해수욕장을 '여성들의 타락을 유도하는 위험한 공간'으로 묘사한 기사가 자주 보인다. 1931년 7월 3일자 부인면 톱으로 게재된 '온천·해수욕장 피서지, 위험한 지대'라는 기사는 (해수욕장에서) 마음이 허한 여자는 자연의 위력과 자기 자신의 미에 도취하여 가지고 방탕하게 변하는 수가 많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정조의 유린까지 당하는 수가 많습니다"라고 썼다. 1935년 8월 1일자 '여름 피서지 유혹…경계해야 할 이성관계'라는 기사는 피서지에 불량배들이 들끓고 있다며 "이러한 곳에 순진하고 아무 분간없는 어린이들을 어른의 감독이 없이 그대로 내여놓는 것은 마치 이를 갈고 있는 맹수의 앞에 살진 고깃 덩어릴 내던지는 것과 같습니다"라며 자녀들을 보내지 말라고 충고했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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