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겨울 숲에서
[중앙일보] 입력 2011.11.28 00:51 / 수정 2011.11.28 00:53
경남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
붉은빛을 머금은
은은한 금빛!
늦가을 숲 속 나무들은
박물관에 진열된 금동불상들.
불상들에게도 육탈이 있는 건지,
그것들은 지금 뼈와 실핏줄을
부챗살처럼 무수히
추운 하늘에 펼치고 있다.
허나 머지않아
그것들은 다시 살이 찌리라.
신록이 금빛으로 눈부실
회춘의 그날!
늦가을인 줄로만 알았는데, 첫눈이 왔단다. 아무도 모르게 내렸고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다시 ‘첫눈’을 기다릴 수밖에. 그 사이 남녘의 숲을 스친 바람도 매서웠나 보다. 줄지어 선 나무들이 낙엽을 마쳤다. 뒹구는 낙엽 위에 내려앉은 한기에 숲이 오스스 떤다. 육탈을 마친 나무들은 구부정하면 구부정한 대로, 곧으면 곧은 대로 야윈 몸뚱아리를 드러냈다. 고행의 수도승, 혹은 금동불상의 모습이다. 부챗살처럼 펼친 나뭇가지 위로 열린 하늘이 새파랗다. 겹겹이 쌓인 낙엽 밟으며 신록 찬란한 신생의 숲을 떠올린다. 옷깃 사이로 스미는 바람 차가워도 육탈한 나무에 다시 살 오르기를 기다리는 마음 탓에 겨울 숲이 포근하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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