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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이야기

앵두

by 까망잉크 2013. 3. 25.

앵두

임진왜란 이후 3백 70여년 쯤에 가야읍 백산고을에 성품이 청렴결백하고

효행이 돈독(敦篤)했던 선비가 있었다.

윗대에는 대가벌족(大家閥族)으로 중앙을 무대로 삼던 특권층(特權層)에 속하였다.

그당시 중앙의 정치정세(政治情勢)의 불안과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의 부조리(不條理)함을

꺼려서 일찍 하향(下鄕)해서 은둔생활(隱遁生活)을 하였던 것이다.

위로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 자녀를 거느리고 낮이면 들에 나가 흙과 벗삼고,

밤이면 사랑방에 자녀들을 불러 모아 글과 행실을 가르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없는 평범한 농부였다.

어릴 때부터 근신(謹愼)하고 어버이 뜻을 어기지 아니 하였다.

서당에 다니면서도 배움에는 마음이 없고 오로지 어버이 봉양에만 뜻을 두어

저녁이면 잠자리를 도와 드리고 아침 일찍 문안하는 범절을 다 하였다.

조석(朝夕)으로 음식 드리기를 성심과 성의를 다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지치거나 게으름이 없었다.

 어버이께서 병으로 불안하시면 근심의 빛이 얼굴에 떠있고,

음식을 전폐하면 밤새도록 눈 한 번 붙이지도 아니하였다.

또한 야삼경(夜三更)에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어버이 대신 고통받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기도 하였다.

아버님의 등에 등창이 나서 종기에 고름이 가득해지자 입으로 빨아내어

시원하게 해드리니 마침내 병이 완치되어 아무러졌다. 그

렇게도 병간호를 지극히 하였건만 천명으로 병세가 위급하여 운명(殞命)하시려 할 제

효자는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드리우게 하니 한나절 동안 다시

소생(蘇生)하였다가 끝내는 운명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운명하시자 애통에 잠긴 나머지 3년동안 굴건제복(屈巾祭服)을 벗지 아니하였다.

장례를 지낸 뒤에도 매일 산소를 살피고 엎드려 통곡함으로 무릎의 옷이 닳고

떨어져 구멍이 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때 효자의 나이 이미 예순이 넘은 백발이었건만 그의 어머님께서 앵두를 즐기시니

 몸소 앵두나무를 심어 정성을 다하여 키우니 해마다

많은 앵두를 즐겨 잡수시던 어머니가 별세를 하시자 매양

앵두나무를 어루만지며 슬퍼하였다.

그후 앵두나무에는 꽃만 피었지 열매는 맺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신기(神奇)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앵두나무를 "효자나무"라고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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