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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스크랩]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우리나라 역대 여왕 3인)

by 까망잉크 2014. 6. 23.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우리나라 역대 여왕 3인)

 

1. 선덕여왕(善德女王, ?~647년, 재위: 632년~647년)

국적 : 신라 (제27대 왕)
이름 : 성은 김(金), 휘는 덕만(德曼)

가족관계 : 진평왕과 마야부인(摩耶夫人)의 장녀이며 태종무열왕과 의자왕의 큰이모,
남편이 없는 독신자라는 설이 있으며, 신라의 규례에 따라 세명의 남편을 두었다는 설도 있음.

후사는 없는 것으로 전해짐.

 

즉위 배경 :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선덕여왕을 신라의 새 왕으로 추대하여

성조황고(聖祖皇姑)라는 호를 올림
(연호 : 인평(仁平))

 

업적 :
632년,(재위원년), 관원들을 전국 곳곳에 파견하여 백성들을 진휼(賑恤)하게 함
633년, 조세를 면제해주는 등 일련의 시책으로 혼란스러웠던 민심을 수습
외교정책 : 고구려와 백제의 침공으로 나라의 존립이 위협을 받자 이를 막는

한편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동맹을 맺어 외교적 방어선을 구축
첨성대를 건립하여 농사에 도움
불교를 널리 장려 (분황사, 영묘사 등 절 건립), 불경 연구
황룡사 9층 목탑 건립 (이웃의 9적을 물리치자는 호국 의지가 담김)

 

관련 설화 : 지귀(志鬼) 설화
선덕여왕을 흠모하던 지귀는 선덕여왕이 영묘사를 행차할 때 그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선덕여왕이 이를 보고 그의 가슴 위에 자신의 팔찌를 놓고 떠났다 함

지귀가 잠이 깨어 이를 알고는 마음에서 불이 나 영묘사(靈廟寺)를 건립하였다고 전해짐

 

2. 진덕여왕(眞德女王, ?~654년, 재위: 647년~654년)

국적 : 신라 (제28대 왕)

이름 : 성은 김(金), 휘는 승만(勝曼)

가족관계 :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과 월명부인(月明夫人)의 딸

 

즉위 배경 : 647년, 사촌언니인 선덕여왕이 비담의 난을 토벌하던

도중에 서거하자 왕위를 계승하여 즉위(연호 : 태화(太和))

 

업적 :
왕권 강화를 통한 정치적 개혁 실시
백지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해 김유신을 출전시켜 백제군을 대적토록 하고,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김춘추를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
당태종과 친교를 돈독히 하여 나당 연합을 체결
진덕여왕은 그 후 김유신으로 하여금 국방력을 증강시켜서 훗날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

 

3. 진성여왕(眞聖女王, ?~897년, 재위 : 887년~897년)

국적 : 신라 (제51대왕)

이름 : 성은 김, 휘는 만(曼) 또는 원(垣)

가족관계 : 경문왕과 문의왕후 김씨의 딸이자 헌강왕과 정강왕의 여동생

 

즉위 배경 :
정강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서거하자 정강왕의 유언에 따라 887년

음력 7월에 왕위를 이어받아 즉위

재위 기간 특징 :
색욕에 빠져 수많은 미소년들을 징집하여 처소로 불러들인 뒤 음사를 즐기는 데에만

주력하여 나랏일을 제대로 돌보려 하지 않음
그 때문에 여왕과 관계를 맺은 정부들과 여왕에게 아첨하는 간신들의 무리가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여 조정의 기강이 해이여왕의 심한 낭비로 국고가 탕진되어 각 지방의

호족들에게 세금 납세를 독촉 민심은 점차 흉흉해져 민란과 도적이 숱하게 일어났으며,

지방 호족들이 독자적 세력을 확장 결국, 지방 호족들은 서로 간에 힘겨루기 양상을 보였으며,

치열한 싸움 끝에 견훤과 궁예가 각자 나라를 세우면서 후삼국 시대가 열림

 


자료 더보기

출처 : 한산이씨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들
글쓴이 : 기라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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