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의 전설
옛날 옛적에 수놈 호랑이 한 마리와 인간으로서 아직 완전한 호랑이가 못 된 암놈 반
호랑이가 살았더랍니다.
99년을 같이 뒹굴며 살아온 이 불완전한
한 쌍은 100년에 한번 인간의 몸으로 합방을
한 후
잉태해서 낳은 아기호랑이를 하늘로 올려보내 옥황상제 아이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는 것을
꿈으로 키우며 지내 왔어요.
호랑이와 합방을 해야만 진정한 호랑이가 되기 때문에,
또한 암놈이 인간반 호랑이반이기에 인간의 몸으로 첫날을 치러야한다는군요.
암호랑이는 산골마을 이진사댁에 태어나 연지라는 여자아이로 자라났고 수호랑이는 9살 먹은
창주라는 남자아이로 변신을 해 10년을 기약하며 김서방네 머슴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지요.
호랑이세계 1년은 인간에겐 10년의 세월이랍니다.
호랑이 99년을 가슴깊이 묻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로를 그리워하며 바라보면서 10년을
한마을에서 살았답니다.
머슴 창주가 들어온 후 김서방네 집엔 살림이 일고, 경사가 겹쳐 김서방집 식구들은 창주를
가족같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물처럼 10년이 흘러갔어요. 세월은 생각보다 빠르답니다.
김서방은 창주가 욕심이 났어요. 아들뿐인 김서방은 창주가 이진사댁 연지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을 눈치채고 그를 잡아둘 생각으로 둘의 혼사를 서둘렀답니다.
창주와 연지는 회심의 미소 속에 혼인을 하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합방을 치르게 되었지요.
창주는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방을 엿보지 말기를 신신당부 했어요.
약속을 받기까지 했지요. 인간들 풍습이 그렇잖아요.
첫날 밤 문 창호지를 뚫어 눈을 갖다대고 엿보기를 하는 것이 그 부부의 백년해로를 비는
미풍이라나 어쨌다나 하면서, 사실은 장난 반에 호기심 반이겠지요.
밤이 되었어요.
여름밤은 짧고 100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지요.
오랜 그리움에 오히려 머쓱하여 앉은 창주.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숙인 연지의
가녀린 어깨 떨림.
운명의 시간은 촛불의 일렁임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지요.
마침내 마주친 눈길. 그들의 그리움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말았어요.
그런데... 어디에나 하지 말라는 것 꼭 더 해야하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있지요.
동네 아이들이 몰래 담을 너머 들어와 창호지를 뚫은 거예요. 커다란 수호랑이가 연지아가씨
몸에 엉겨붙어있는 끔찍한 광경을 보고 놀란 아이들은 온 동네방네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답니다.
합방의 꿈은 깨어지고 결국 수호랑이는 인간들에게 잡혀 끌려가 처참하게 가죽을 벗기고
죽임을 당하고 말았어요.
그 날부터 미치다시피한 연지 아가씨는 뒷산 절벽 위 창주가 호랑이로 살았던 굴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했대요.
그곳에 오르면 창주가 있을 것 같은, 그를 만나겠다는 갈망으로 호랑이의 부르는 듯한
울부짖음을 환청으로 들으면서 무릎이 깨지고 손톱이 빠지고 피가 맺히다 못해 줄줄 흘리면서
이를 악물고 오르고 오르다가...
끝내 지쳐 다 오르지 못하고 절벽아래 연못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군요.
그녀의 恨은 씨로 맺혀, 싹이 트고 덩굴을 벋더니 절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주홍핏빛 능소화를
피웠답니다.
절벽에 핀 애절한 능소화 꽃 한 송이가 연못에 비쳐 물꽃을 피우면 아이는 그 주홍빛 꽃에
홀려 잡으려고 손을 뻗다가 물에 빠져 죽게 되지요.
아이가 죽은 다음날, 능소화 위로 죽은 아이의 키만큼 자리에 새로운 꽃송이가 피어나고
아이가 또 하나 죽으면 또 한 송이가 피어 호랑이가 살던 높고 험한 굴을 향해 능소화가
아이의 키를 밟고 오르듯 피어나고 있답니다.
사람들은 그 연못을 언제부터인가 연지못이라 부르게 되었고 해마다 열린 꽃송이만큼
아이들은 연지못에 빠져죽는다고 하네요.
혹시 님이 가족과 여행을 하시다가 깊고 큰 연못위로 높이 솟은 절벽에 당신이 전에 본적 없는
덩굴로 애타게 기어오르는 붉주황 꽃을 보신다면 얼른 아이들의 눈을 꼭 가리세요.
연못에 비친 능소화를 아이들이 절대 볼 수 없도록.
아직도 그녀는 호랑이 굴에 도착하지 못했답니다.
절벽을 다 기어오를 때까지 도대체 몇 송이의 능소화가 더 필요할는지...
출처 :시와 별 그리고 원문보기 글쓴이 : 하늘다리
'이러 저런 아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답고 황홀한 음악영상 (0) | 2014.08.29 |
---|---|
[스크랩] 과거와 현재의 메신져 우표 (0) | 2014.08.20 |
절 과 불상 (0) | 2014.07.09 |
허허실실(虛虛實實) (0) | 2014.07.08 |
[스크랩] 조선 의적 / 임꺽정 [林 ―] (0) | 2014.07.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