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야화 (129)부정 탄 개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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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손윗동서가 마주 보고 한숨을 쉬며 앞날을 걱정하자 청상과부댁은 단호히 말했다.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이 집 귀신이 되기로 마음먹은 지 오랩니다. 뱃속에서 발 차는 걸로 봐 사내가 분명하니 보란 듯이 잘 키워서 저승 간 그이 대를 이을 겁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형은 가슴이 뭉클해져 한평생 제수씨를 돌보리라 가슴에 새겼다. 임산부에게 좋다는 탕제를 지어 와 손수 달이고 장에 가면 깨엿이다 떡이다 사다 주고, 윗동서는 벌써 아이 포대기까지 만들었다.
청상과부댁의 배가 동산만하게 부풀어 올랐다. 초가을 햇살에 마당의 고추가 빨갛게 마르던 어느 날, 형네 사립문이 열렸다.
“이 사람아, 빨리 나오지 않고 뭘 해.”
형은 이웃 친구의 부름에 옆집으로 갔다. 얼마 후 “깨갱” 소리와 함께 퍽퍽 개 패는 소리가 났다. 여름내 흘린 땀을 벌충한다고 동네 남정네들이 커다란 황구 한마리를 잡은 것이다.
형이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왔을 때 제수씨 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더니 부인이 사색이 되어 나왔다. 사산을 한 것이다. 부인은 남편의 가슴을 치고 저고리를 찢으며 울부짖었다.
“출산이 닥친 걸 알면서 재수 없게 개는 왜 잡아먹었소.”
부인은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했다. 그날 밤, 형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을 안고 영아의 시체를 싸서 산으로 가 동생의 묘 옆에 묻었다. 형은 제수씨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한달쯤 지난 어느 날, 형은 부인에게 말문을 열었다.
“오히려 잘된 일인지 모르네. 제수씨를 개가시키세.”
부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튿날 부인이 동서에게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자, “형님, 전에도 말씀 드렸잖아요. 저를 이 집에서 쫓아낼 작정은 마세요.” 부인은 동서에게 무안만 당했다.
얼마 후 부인의 배가 차올랐다. 출산이 가까워 산통이 시작되자 동네 산파가 오고, 제수씨도 물을 데우고 수건을 준비하며 집안이 부산했다.
그때 형은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 목줄을 걸었다. “응애” 울음소리가 터질 때 형이 문밖에서 개줄을 힘껏 잡아당기자 목이 졸린 개가 캑캑거리며 사지를 축 늘어트렸다.
고추를 달고 나온 달덩이 같은 아이는 힘차게 젖을 빨았다. 개를 잡아 부정을 탔다고 아이에게 화가 미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제수씨에게 증명한 것이다. 무럭무럭 자란 그 아이는 제수씨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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