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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야화 여관 여주인

by 까망잉크 2018. 7. 4.

 

조주청의 사랑방야화 여관 여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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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집 규수 설난은 어려서부터 엄한 할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고 어머니로부터 여자로서의 예절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혼기가 찰 때까지 식구들 말고는 다른 남자와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었다. 설난이 열일곱이 되자 떠들썩하게 혼례를 올리며 부모가 정한 대감댁으로 시집을 갔다. 신랑은 열세살짜리 어린애라 밤이 되면 베개를 들고 제 어미 방으로 달려가곤 했다.

시어머니가 어떻게 신방 교육을 시켰는지 어느 날부터 신랑은 남자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신랑은 손이 귀한 집안의 3대 독자라 신방 차린 지 석달도 안됐는데 시어머니는 벌써 태기가 있는지 알아본다고 의원을 불러 설난을 진맥하며 야단법석이다. 어린 신랑이 밤마다 부지런히 신부의 고쟁이를 벗기고 깝작깝작 씨를 뿌리지만 석달이 가고 넉달이 가도 입덧이 없다.

반년이 지나도 태기가 없자 의원 하나가 집에 살다시피 하며 음양합환탕이다 호용곽신탕이다 온갖 약을 달여 신부에게 먹이고, 시어머니는 새벽마다 우물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삼신할미께 빌었지만 백약이 무효. 일년이 가고 이년이 가도 감감무소식이다. 집안이 수군대더니 마침내 신랑은 시앗을 봐 이웃에 딴살림을 차렸다. 서너달이 되자 입덧을 한다며 시앗을 집으로 데려왔다. 배가 불러 온 시앗이 얼마나 유세를 부리는지 설난은 보따리를 싸 들고 집을 나왔다.

친정으로 가다 말고 고갯마루에서 치마끈을 풀어 나무에 걸고 목을 매는데, 마침 지나가던 젊은 소금장수가 끈을 끌러 설난을 안고 풀밭에 나뒹굴었다. 소금장수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요! 목을 매다니….”

설난은 소금장수 품에 안겨 눈이 붓도록 울었다. 한참 울다 보니 남자 냄새에 몸이 뜨거워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금장수와 설난은 한데 섞여 불덩어리가 되었다. 설난은 깜짝 놀랐다. 어린 신랑이 깝죽거리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여자는 죽은 듯이 누워 신랑이 뿌린 씨앗으로 아이만 낳는 줄 알았는데,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이런 낙이 있을 줄 몰랐다.

몇년 뒤, 제물포 부둣가 반듯한 터에 일년이 넘게 목수들이 뚝딱거리더니 방이 열여섯개나 되는 깨끗한 여관이 문을 열었다. 여관은 황해도·전라도에서 오는 쌀가마 실은 배, 새우젓 배, 소금 배들로 돈이 끓는 제물포에서도 거상들이 단골로 찾는 여관이 되었다. 이 여관이 소문난 것은 새로 지은 건물이나 깔끔한 식사보다는 이 여관의 여주인 때문이다. 매일 밤 여관 투숙객 중 한사람은 안방 내실로 초대되어 번듯한 술상을 받고, 기품 있고 우아한 젊은 여주인과 광란의 밤을 보내는 것이다. 여관 주인이 바로 설난이다.

시집과 친정에서 묵직한 전대를 받아 멀리 제물포에 뿌리를 내리고 짜릿한 새 출발을 한 것이다. 그때 그 소금장수는 설난의 도움으로 소금 배를 소유한 거상이 되어 가끔씩 여관의 안방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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