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동(良才洞) 지명 유래
서울 서초구 양재동은
조선조 때 양재도찰방(良才道察訪)이 있었던 곳으로
종6품 찰방이 있어 그 밑에 12개의 작은 역을 두고
관원에게 말과 숙소를 제공했던 곳이다.
양재역을 말죽거리라고도 하였는데
1624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도성을 침범하자
인조는 황황히 한양을 빠져 나와 충청도 공주로 피난케 되었다.
도성을 벗어난 임금 일행이
이곳에 이르러서는 허기와 갈증에 지쳐 있었다.
그러자 이곳에 사는 유생들이 급히 팥죽을 쑤어 바치니
임금은 말에서 내릴 틈도 없이
말 위에서 죽을 먹고 부랴부랴 떠났다 해서
말죽거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 이야기는
한양 도성에서 이곳까지는 한나절 거리로
지방에서 한양에 도달하려면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말의 먹이인 말죽을 먹이는 곳이라 해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
- ●양재동(良才洞)이라는 지명은
어질고 재주 있는 선비들이 많이 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재동은 조선 명종 때 벽서사건으로 유명한 곳이다.
인종이 갑자기 죽고 어린 명종이 즉위하자
그 모친인 문정왕후 윤씨가
수렴청정하여 정권을 잡아 나라를 다스렸다.
그래서 이로 인한 폐단도 많았는데
이곳 양재역 벽에 붉은 글씨로
"여자가 임금 위에 있고 간신이 그 아래서 국권을 농락하니
어찌 한심치 아니하랴!"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문정왕후는
대로하여 여러 선비를 잡아죽이고
당대의 명현 수십 명을 귀양 보내는 등 이른바 정미사화를 일으켰다.
이것을 역사는
`양재역 벽서사옥`이라고 하였다
.
- ●이태원 지명 유래
서울 용산구 이태원은
서울 속의 외국인 거리다.
점포마다 걸려있는 간판은 모두 외래어이고 오고 가는 행인도
내국인보다는 외국인이 더 많다.
한강과 가까운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로 부대가 주둔하기에 적합한 장소인가 보다.
지금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임진왜란 때는 왜적이 주둔하고 있었다.
당시 이곳에는
여승인 비구니들이 수도하는 운종사(雲鍾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왜적이 주둔하면서 여승들을 겁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왜군이 서울에서 물러나자
조정은 왜군에게 겁탈 당해 낳은 아이들 문제로 고심하였다.
마침내 조정에서는 운종사 여승을 포함하여
왜적의 아이를 낳은 부녀자들을 벌하지 않기로 하고
이곳에 보육원을 지어 그 아이들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때부터 이곳을 이태원(異胎院)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때 항복한 왜군들이 조선에 귀화하여
여기에 모여 살았으므로 이타인(異他人)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의 이태원(梨泰院)으로 쓰인 것은
효종 때 이곳에 배나무를 많이 심어 재배했기 때문에 바뀌게 되었다.
<참고자료 : 600년 서울 땅이름 이야기, 김기빈 지음, 살림터
- ●왕십리(往十里) 전설
조선 개국 초기 무학대사가 도읍을 정하려고
지금의 왕십리 부근에서 지형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한 늙은이가 소를 타고 지나가다가 채찍으로 소를 때리면서
"이 소가 미련하기는 꼭 무학과 같구나.
바른 곳을 놔두고 엉뚱한 곳을 보다니..." 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무학이 그 노인에게 예를 갖추고
도읍지의 자리를 물었더니
채찍으로 서북쪽을 가리키며 십리를 더 가라고 하였다.
그 말에 따라서 지금의 경복궁 자리를 정하였는데
왕십리라는 이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 늙은이는 도선이 현신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한 다음
새로운 궁궐(경복궁)을 짓고 도성을 쌓으려 할 때 어디서 어디까지 쌓아야 할지 난감했다. 눈이 하나의 선을 따라 선 밖에는 눈이 쌓여 있고, 선 안쪽에는 눈이 없었다. 이 태조는 이러한 현상은 우연이 아니고 필시 하늘에서 내린 뜻이라 생각하고 그 선을 따라 도성을 쌓도록 하였다. 도성은 산의 능선을 따라 북악산, 인왕산, 남산, 동대문에 있는 낙산을 연결하는 것으로 둘레가 40리(약17Km)에 이른다. 도성을 눈설(雪)자를 써서 `설(雪)울`이라고 불렀고 설울이 서울로 발음되면서 오늘날 서울이 유래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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