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61) 전교생이 함께했던 '영화 단체 관람'… 정부, "유신이념 고취 영화 보여줘라"
발행일 : 2017.03.15 / 여론/독자 A32 면
▲ 종이신문보기1963년 4월 12일 오후, 전쟁 기록영화 '가미까제 특공대'를 상영 중이던 서울 대한극장의 객석이 스크린 못잖은 '전쟁터'가 됐다. 극장 측이 3개 학교의 단체 관람 학생들을 한꺼번에 밀어 넣어 대혼란이 빚어진 것이다. 일반 관객까지 마구 입장시켜 객석 2000여 석의 2배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뒤엉켰다. 영화가 시작됐는데도 어둠 속에서 헤매며 자리를 못 잡은 어린이들의 고함 소리가 끊이지 않아 초반 20분가량은 영화 음향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혼란 속에 남학생 한 명이 3층에서 2층으로 떨어져 중상을 입는 사고까지 났다. 예고편 상영 순서에선 하필이면 진한 키스신 등이 포함된 '허슬러' 등 성인영화 2편이 소개돼 학생들이 기성을 질렀다(경향신문 1963년 4월 13일 자). 각급 학교의 '전교생 영화 단체 관람'이 성행하던 시절의 어지러운 극장 풍경들이 한꺼번에 펼쳐진 날이었다.
요즘도 학생들의 영화 단체 관람이 있지만 대개 100명 안팎의 규모인 데 비해, 1950~1970년대의 단체 관람은 1000명 안팎의 전교생이 움직인 대형 행사였다. 학생들의 영화관 출입을 단속하던 시절이어서, 단체 관람은 학생이 영화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대개 중간시험·기말시험이 끝나면 학교 측은 수고했다고 위로하듯 단체 관람 날짜를 잡았다. 영화 내용 불문하고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들떴다. 남학생들은 극장 안에 여학생들이라도 보이면 휘파람 불고 난리가 났다. 그러다 보니 1960년대엔 단체 관람 도중의 안전사고가 가끔 터졌다. 서울로 수학여행 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던 지방 학생이 '벤허'를 관람하며 졸다가 2층 객석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단체 관람할 작품의 선정을 놓고도 논란이 잦았다. 1958년엔 한 남자에게 농락당해 임신한 여성의 비극을 담은 영화를 5개 초등학교가 학생들에게 단체 관람시켰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학부모들은 "업자의 수입을 올려주려고 단체 관람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제3공화국 시절엔 '십계' '닥터 지바고' 같은 고전 외화뿐 아니라 '성웅 이순신' '빨간 마후라'처럼 애국심과 반공정신을 고취하는 영화들의 단체 관람이 많았다. 10월 유신 이후인 1976년 문공부는 전쟁영화 '원산공작' 등 국책영화 5편을 거명하며 학생들에게 단체로 관람시켜 '유신이념을 고취'시키라고 문교부에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유신체제에 대한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1975년)를 앞두고 교육 당국이 '새야새야 유신새야/ 너도나도 잘 살자는/ 유신헌법 고수하여/ 국력배양 이룩하자'라는 노래를 학생들에게 보급하라고 지시했던 시절이었다.
오늘날 학생들의 영화 단체 관람은 그 개념이 달라졌다. 학급이나 동아리별로 보고 싶은 영화를 할인받아 보려고 함께 관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직장인들도 희망자끼리 수십명이 단체 관람을 하기도 한다. 하향식·타율적이던 단체 관람이 자율적 문화행사로 변모해 이어지고 있다. 단체 관람 역사 반세기 만의 '진화'다.
김명환 前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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