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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貧者)의 식탁

by 까망잉크 2021. 10. 20.

빈자(貧者)의 식탁 제2회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나

 

2회빈곤한 식탁은 질병을 부른다

최상헌(가명·38)씨는 8월 5일부터 11일까지 7일간 14끼를 먹었다.
이틀은 하루 한 끼만 먹었고, 사흘은 두 끼를 먹었다.

  • 8월 7일 아침 겸 점심
    진라면 매운맛 수프에 사리면
  • 8월 7일 저녁
    틈새라면 수프에 사리면
  • 8월 8일 아침 겸 점심
    틈새라면 수프에 사리면
  • 8월 10일 아침
    틈새라면 수프에 사리면
  • 8월 11일 아침 겸 점심
    미역국라면 수프에 사리면
  • 8월 11일 저녁
    틈새라면 수프에 사리면

14번 식사 중 9번은 하얀 면발이 도드라지는 라면이었다.
나머지는 무료 도시락(2번)과 바나나(2번), 22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이었다.

그는 라면을 더 많이, 더 저렴하게 먹기 위해 사리면을 활용한다.
라면을 한 개 반씩 두 차례 끓이면 분말 수프가 하나 남는다.

남은 분말 수프를 사리면과 함께 끓이면 라면 하나를 더 먹을 수 있다.

“라면사리 40봉 들어 있는 게 1만1080원이에요. 이렇게 먹으면 조금 저렴해지죠.”

그가 찍은 라면 사진에 건더기 수프가 잘 보이지 않는 이유다. 계란도 김치도 없다.

최씨는 4년 전 유통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뒤 공사장과 물류창고에서 일했다.
지난해 허리를 다쳐 일할 수 없게 되면서 식비에 돈을 지출할 여유가 없어졌다.
서울 대학동 옛 고시촌에서 라면과 무료 급식을 먹고 산다.
월·수·금 3번이던 무료 급식은 코로나19 이후 화·목 2번으로 줄었다.

최상헌(가명·38)씨의 하루 영양 살펴보니

에너지(단위: ㎉)

  • 250030~49세 남성 에너지 필요추정량
  • 979에너지 섭취

단백질(단위: g)

  • 5030~49세 남성 단백질 평균필요량
  • 24단백질 섭취

자료: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최씨의 7일치 식사 사진 14장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윤지현 교수가 들여다봤다.

분석 결과 최씨가 하루 평균 섭취한 에너지는 979㎉였다.
30~49세 남성의 에너지 필요 추정량인 2500㎉의 39.1%다.
몸에 필요한 여러 무기질 중 목표 이상으로 섭취한 것은 나트륨뿐이다.
윤 교수는 “단백질 공급원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영양분석 프로그램에서조차 ‘라면’을 불러오면 계란 한 개가 기본으로 포함돼 있는데, 이 분은 계란이 안 보여 빼고 분석했습니다.”

질 낮은 식사는 ‘한 끼를 그냥 때웠다’는 서글픔에 그치지 않는다.

질적, 양적 영양 섭취가 부족하게 되고 이는 결국 질병으로 이어진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빈자의 식탁’ 시리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저소득층 25명에게 식사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달라고 요청했다. 사진을 보내온 13명 가운데 6명의 일주일치 식사 사진 85장을 윤 교수에게 보냈다.

윤 교수는 사진 속 음식을 한국영양학회의 식단영양 분석 프로그램 캔프로(CAN-Pro)에 입력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결과 6명의 하루 평균 에너지(㎉) 섭취량은 1077㎉로 2019년 성인 하루 평균인 1993㎉의 54.0%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모든 사람이 고기·생선·달걀·콩류군과 과일군의 섭취가 부족하다고 판정됐다. 윤 교수는 “식생활의 질이 너무 낮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대학생 아들과 둘이 사는 이오경(가명·59·여)씨의 일주일 식사도 영양학적으로 낙제점을 받았다.

그는 지난 7월 28일 저녁 된장국에 만 밥과 김치, 멸치볶음을 먹었다. 8월 4일 점심에도 된장국에 밥을 말아 장아찌와 함께 한 그릇을 비웠다.

  • 7월 28일 저녁
  • 8월 4일 점심
  • 8월 1일 저녁
  • 8월 3일 아침 겸 점심
  • 8월 6일 저녁
  • 8월 8일 저녁
  • 8월 10일 저녁
  • 8월 11일 저녁

반찬은 김치를 포함해 두 가지일 때가 많았고,
반찬 하나만 놓고 밥을 먹은 날도 있었다.
고추·방풍나물 장아찌는 6번 반복해 식탁에 올라왔다.

사진 19장 가운데
떡이나 빵이 있는 경우가 7장이었다.

이오경(가명·59·여)씨의 하루 영양 살펴보니

에너지(단위: ㎉)

  • 170050~64세 여성 에너지 필요추정량
  • 710에너지 섭취

단백질(단위: g)

  • 4050~64세 여성 단백질 평균필요량
  • 24단백질 섭취

자료: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영양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씨는 15종류의 영양소 섭취가 부족했다.

그의 1일 평균 에너지 섭취량은 710㎉.
50~64세 여성의 1일 필요 추정량인 1700㎉의 41.7%에 불과하다.

단백질은 하루 평균 24g 섭취한 것으로 분석돼 필요량인 40g에 못 미쳤다.

특히 거의 모든 식품에 골고루 함유된 인(P)을 평균 필요량 미만으로 섭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 섭취가 원활하지 않으면 뼈가 아프고 골연화증, 근육 약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씨는 “아픈 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갑상선 암 수술을 해서 목소리가 잘 안 나오고, 손목 발목 무릎 허리 다 아파요.”

이씨는 남편 없이 식당 일을 하며 아들을 키웠고, 지금은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는다.
수급비로 월 90만원을 받는데, 장을 보러갈 때는 딱 3만원만 손에 쥐고 간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혼자 살고 있는 장용기(가명·59)씨의 식사도 ‘곡류군 위주로 식품 다양성이 매우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일주일간 빵과 라면을 각각 5번 먹었다.

장씨는 당뇨, 고혈압, 고지혈, 하지정맥류 등을 앓고 있다.
당장 갈 곳이 없어 친형이 하는 학원의 빈 강의실에서 지낸다.
부엌이 없는 학원에서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은 라면이 전부다.

“의사는 이런 거 저런 거 하라고 자꾸 그러는데 현실상 그럴 수 없으니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식단 분석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하루 평균 섭취한 열량은 970㎉로 50~64세 남성의 에너지 필요 추정량 2200㎉의 44.0%였다. 단백질 섭취량도 29g으로 평균 필요량 50g에 한참 못 미쳤다.

윤 교수는 “당뇨와 고혈압이 있다면 탄수화물, 나트륨을 많이 먹으면 안된다. 그런데 장씨의 식사는 탄수화물, 나트륨 모두 과잉”이라고 평가했다.

심장질환으로 일자리를 잃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오민정(가명·41·여)씨의 식단은
양질의 동물성 단백질이 부족한 것으로 분석됐다.

오씨 식사는 나라미와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밑반찬과 푸드뱅크의 지원이 전부다. 주된 단백질원은 검정콩조림과 두유다.

오민정(가명·41·여)씨의 하루 영양 살펴보니

에너지(단위: ㎉)

  • 190030~49세 여성 에너지 필요추정량
  • 990에너지 섭취

단백질(단위: g)

  • 4030~49세 여성 단백질 평균필요량
  • 35단백질 섭취

자료: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일 평균 단백질 섭취량은 35g.
30~49세 여성 평균 필요량인 40g에 못 미쳤다.
오씨는 앞으로도 이런 식사를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관절염, 허리디스크, 저혈당, 저혈압 등의 영향으로 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도 집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다.

  • 7월 27일 저녁
  • 7월 28일 아침
  • 7월 28일 저녁
  • 7월 29일 아침

서울 강북구의 한 고시원에서 혼자 사는 김종환(가명·62)씨는
“여기서(고시원에서)는 내가 반찬을 제일 잘 해먹는 축에 속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식사 사진도
영양학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8개의 영양소 섭취가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과일군, 유제품군 섭취가 부족해 보인다는 분석이었다.

  • 7월 29일 저녁
  • 7월 30일 아침
  • 7월 30일 저녁
  • 7월 31일 아침

저소득층 6명 식사의 공통된 특징은 탄수화물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탄수화물 섭취 비율이 높으면 당뇨, 고혈압, 대사증후군 등 만성질환 위험이 증가한다.

윤 교수는 “1960, 70년대처럼 식단의 80~90%를 탄수화물이 차지하는 식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면 질병에 대한 민감도가 증가해 감염성 질환에 취약해진다. 가난하다고 이를 모를 리 없다.

최상헌씨는 “분명 식비를 늘리면 영양 불균형이 해소가 되겠죠. 면역력이 강화되면 제 몸에 잔존해 있던 그런(나쁜) 부분들도 약물치료가 아니더라도 해소될 확률이 높을 거고요”라고 말했다.

2021년 9월 14일

  • 기획·취재이슈&탐사 2팀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 사진윤성호 기자, 아시아문화원·박민구 작가 제공
  • 삽화전진이 기자
  • 디자인&퍼블리싱정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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