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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貧者)의 식탁 #5

by 까망잉크 2021. 10. 24.

빈자(貧者)의 식탁  제5회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나

 

5회고독한 죽음, 마지막 식사는

노란 컨테이너 상자에 햇반과 즉석 카레, 야채참치 통조림, 블루베리잼이 담겨 있었다. 비타민C 영양제와 하지정맥류 치료제도 눈에 들어 왔다.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30대 A씨 방에서 나온 유품이다. A씨는 거주하던 좁은 자취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 지 2주가 지난 뒤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A씨는 오랫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쌀이 부족했는지 나라미를 구입하는 방법이 담긴 ‘정부양곡 할인구입 신청 안내문’이 방에서 발견됐다.

일용직 인력업체와 노숙인임시보호시설 명함도 나왔다.

현장을 정리한 특수청소업체 관계자는 “30대 남성 집에서 양곡 지원 관련 서류가 나온 적은 처음” 이라고 말했다.

 

그가 남긴 다이어리에는
2년 전 거리에서 노숙할 때 쓴 일기가 담겨 있었다.

“노숙 1일차. 가만히 안 움직이면 배는 별로 안 고픔. (중략) 어제 일요일 마지막 밥을 먹었다. 일주일 중 제대로 된 한 끼의 식사. 내가 가진 건 견과류 조금, 물, 셰이크 3봉.”

세상과 단절돼 방에서 홀로 숨을 거두는 이들의 부엌은 황량하다. 냉장고는 비어 있고 선반에도 인스턴트식품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혼자 살다 보니 제대로 요리를 해 먹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한 특수청소업체 대표는 “고독사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건 라면과 통조림” 이라고 말했다.

“냉장고에도 기껏해야 김치나 즉석식품뿐이에요. 조리 환경이 열악해 가스가 끊겨 있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아시아문화원은 2019년 ‘일인가구·무연고자 부엌 조사 및 스토리텔링’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망 현장 냉장고의 음식은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부패한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주방 그릇과 용기, 밥통은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공통적으로 술이 발견됐다.

 

2019년 12월 경기도 부천의 한 아파트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 B씨(68)의 냉장고는 휑한 모습이었다. 오래 방치돼 싹이 난 감자와 부서진 양파, 딱딱해진 떡, 김치가 보관된 식품의 전부였다.

B씨에게 식사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만성 신장질환으로 신장 이식수술을 한 뒤 부작용으로 잇몸이 무너졌다. 치아가 빠지면서 급하게 맞춘 틀니는 잇몸에 잘 맞지 않았다. 음식을 좀처럼 씹어 넘기지 못했다. 그는 삼키기 쉽게 맹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부드럽게 잘리는 생선 통조림을 반찬으로 먹었다.

혼자 사는 노인의 식생활을 돌봐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영양 균형이 깨진 식단은 몸에 무리를 안겼다. 체중이 점점 빠졌고 이식한 신장에도 문제가 생겼다. 그는 집에서 쓰러진 뒤 홀로 숨을 거뒀다.

김모(46)씨가 살던 인천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방은 소주병으로 가득했다. 배달시켜 먹고 남은 족발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했다. 냉장고에는 구청에서 지급받은 것으로 보이는 쌀과 유효기간이 지난 칼집 삼겹살, 마른 멸치가 보관돼 있었다. 음식을 조리해 먹은 흔적은 거의 없었다.

김씨는 사고로 후천적 시각장애인이 됐다. 갑자기 앞이 안 보이니 사회 활동이 급격히 줄었고 결국 고립됐다. 실직과 이혼 뒤 2018년 12월 이 반지하방에 입주했다.

집주인은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혼자 있던 김씨는 자주 배달음식을 안주 삼아 술로 끼니를 대신했다. 장애인복지관의 돌봄 지원이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반지하방에서 겨우 한 해를 버텼다.

 

고독사를 방지할 수 있는 것도 ‘밥’이다.

서울 월곡동의 독거노인 주춘자(80)씨는 최근 이웃 또래 노인이 집에서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복지관에서 고인과 통화가 되지 않자 주씨에게 얼른 가 달라고 부탁해 확인하게 된 것이다.

“나하고 전날도 이야기를 한 분인데, 잠을 자다 반듯이 누워서 가버렸더라고. 나도 죽으면 (복지관) 선생님이 가장 먼저 발견할 거야.”

주씨에겐 아들과 딸이 있지만, 아들과는 연이 끊겼고 딸은 몸이 아프다.

 

무료급식 대상자인 주씨는 1주일에 두 차례 복지관에 가서 세 끼 분량의 햇반과 즉석식품을 수령한다.

이웃 노인처럼 연락이 갑자기 끊기거나 말없이 음식을 받으러 나오지 않으면 복지관에서 즉시 확인에 나선다. 혹시 모를 사고를 막고,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김지연 생명의전화종합사회복지관 과장은 “음식 지원을 중심으로 노인분들의 삶에 다양하게 연결되고 어우러지는 것이 우리의 목표” 라고 했다.

 

고독사 위험군인 독거 중장년이 모여 사는 서울 관악구 고시촌에도 ‘밥’은 사회적 연결망으로 작동한다.

대학동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은 저소득층 150여명에게 주 2회 무료 도시락을 제공한다. 수령자에 중장년층이 많지만 시험을 준비하거나 취업에 실패한 20, 30대 청년도 있다

박보아 해피인 대표는 고독사를 막으려면 당장의 한 끼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라도 있으니까 집에서 혼자 극단적 생각을 하다가도 와서 밥을 먹는 거죠. 밥 먹으면서 관계 형성을 하고 모임도 하면서 고독사를 막는 거지, 띠 두르고 캠페인 한다고 해서 예방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2021년 9월 26일

  • 기획·취재이슈&탐사 2팀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extreme@kmib.co.kr
  • 사진윤성호 권현구 기자, 아시아문화원·박민구 작가 제공
  • 디자인&퍼블리싱정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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