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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貧者)의 식탁#7

by 까망잉크 2021. 10. 27.

빈자(貧者)의 식탁 제7회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나

7회·끝   존엄한 식사의 길

 

 

 

 

서울 성북구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이춘숙(가명·84) 할머니는 1년 새 몸무게가 60㎏에서 54㎏으로 줄었다.

몸에 기운이 없어 움직이는 것도 힘이 달린다. 한 달 전엔 문턱을 넘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허리도 다리도 아파. 힘이 하나도 없어.”

 

코로나19 확산 전까지 할머니는 매일 복지관에서 다른 노인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식당 운영이 중단됐다.

대체식으로 3일간 먹을 분량의 레토르트 식품이 일주일에 두 번 나온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밥’(혼자 먹는 밥)을 하려니 좀처럼 입맛이 돌지 않았다.

밥맛이 없거나 반찬이 떨어지면 할머니는 맨밥을 물에 말아 먹었다.

서울 강서구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김영인(가명·77) 할아버지도 최근 넉 달간 체중이 5㎏ 줄었다.

치아 문제로 고생하던 김 할아버지는 지난 4월 싸구려 틀니를 맞춘 후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

복지관 도시락이 점심마다 배달되지만 온전히 씹어 넘길 수 있는 반찬은 많지 않다.

빈곤한 식사는 바로 몸에 태가 난다. 취재팀이 ‘빈자의 식탁’ 시리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저소득층 25명 중 일부는 양질의 음식을 먹지 못해 야위고 있었다.

오현민 서울시사회복지관협회 사무국장은 “코로나19 이후 무료 급식이 중단되고 즉석 식품이나 도시락으로 변경되면서 살이 빠진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고 말했다.

영양 취약계층에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서울시복지재단은 2019년 저소득층 어르신 120명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실시했다.

6개월간 맞춤형 도시락·식단 상담 등을 제공하고 변화를 살펴보는 연구를 진행했다.

구분만성질환(당뇨,고혈압)식저작곤란식신장질환식2019.9.23 잡곡밥/찹쌀백미밥 돼지갈비곤약찜 죽순파프리카볶음 깻잎 치커리 샐러드 단무지 건애플망고, 유산균2019.9.24 잡곡밥/찹쌀백미밥 동태무조림 표고버섯야채볶음 얼갈이나물 삼삼김치 구운달걀, 유산균2019.9.25 잡곡밥/찹쌀백미밥 훈제오리채소볶음 치커리파프리카샐러드 도토리묵, 간장소스 삼삼김치 유산균, 그리비아

연구팀은 먼저 현재 서울시의 저소득 어르신 한 끼 무료 급식 예산(3500원)보다 1000원 높은 4500원을 투입해 도시락을 만들었다. 도시락 종류도 건강 상태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눴다.

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을 겪는 어르신에겐 염도와 당분을 낮춘 도시락을 제공했다.

음식을 씹기 곤란한 어르신을 위해 딱딱한 고기 반찬 등을 다져 넣었다.

신장질환을 겪는 어르신에겐 단백질 함유량이 높지 않도록 메뉴를 조절했다.

이런 식사를 평일 한 끼씩 제공했다.

6개월 뒤 측정 결과 양질의 식사는영양·건강 지표를 모두 개선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맞춤형 도시락 사업 전후 일평균 영양 섭취 변화

에너지(단위: ㎉)

  • 1188사업 전
  • 1695사업 후

단백질(단위: g)

  • 47사업 전
  • 68사업 후

자료: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시 어르신 식사배달 사업 개선방안 연구'

어르신 120명 가운데 신체질량지수(BMI) 기준 저체중 비율은 12.0%에서 6.3%로, 고도비만 비율도 10.3%에서 9.0%로 감소했다. 혈중 콜레스테롤 경계치(200~229㎎/㎗) 비율도 13.4%에서 9.8%로, 위험 구간(230㎎/㎗ 이상) 비율도 8.4%에서 3.8%로 낮아졌다. 하루 평균 에너지 섭취량은 1188㎉에서 1695㎉로, 단백질 섭취량은 47g에서 68g으로 늘었다. 특히 영양소 기준치 미달 비율이 높았던 칼슘·비타민 A·C 섭취가 크게 개선됐다.

맞춤형 도시락 사업 전후 우울감 변화(단위: 명, %)

  • 67 (55.8)사업 전 우울 증상
  • 20 (16.7)사업 후 우울 증상

자료: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시 어르신 식사배달 사업 개선방안 연구'

따뜻한 밥 한 끼에 우울감도 개선됐다.
맞춤형 도시락을 제공하기 전 어르신 120명 가운데 67명(55.8%)이 우울 증상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시범 사업이 끝난 후 20명(16.7%)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식사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려면 세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맞춤형 식단 관리를 담당할 영양사와 충분한 조리 시설·공간, 식사를 배달할 인력이다.

한편 저소득층이 질 좋은 식재료를 직접 살 수 있도록 농식품 지원(바우처) 제도를 확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농식품 바우처는 중위소득 50% 이하 취약 계층 가구에 과일·채소·잡곡·우유·계란 등 7개 식재료를 살 수 있는 전자카드를 지급하는 제도다. 국내산 식재료 소비를 늘리기 위해 농협 계열 마트에서만 쓸 수 있도록 한다.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취약계층은 농식품 바우처로 몇만원이라도 더 받게 되면 식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식품 시장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밀키트(간편조리식)를 저소득층 식사 지원에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식품영양 전문가들은 음식 지원뿐 아니라 식생활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정부와 국회 차원의 취약계층 영양·식단 지원은 이제 막 첫발을 뗀 상태다. 국회는 지난 7월 전국 각지에 ‘사회복지급식관리지원센터’를 만들어 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 복지시설에 위생·영양 관리 등을 지원하는 내용의 ‘사회복지시설급식법’을 제정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내년 7월 1일 법 시행 시점에 맞춰 사회복지급식관리지원센터 30곳을 운영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사회복지시설 급식소 1만1569곳 가운데 8544곳(73%)은 영양사 없이 운영되고 있다. 지자체 소관에 맡겨진 저소득층 무료 급식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취재팀이 만난 영양 취약계층과 무료 급식을 운영하는 사회복지관·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다음과 같다.

“코로나로 인해 일회용 도시락 소모품비가 발생하는데,그 부분이 조금 운영하는 데 있어 어려워요.”

(서울 한 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

“고시원에선 휴대용 가스버너도 쓸 수가 없어요.이분들이 볶음밥이라도 해먹을 수 있는 공유 주방이동네마다 있으면 어떨까요.”

(박보아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 대표)

2021년 9월 30일

  • 기획·취재이슈&탐사 2팀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listen@kmib.co.kr
  • 사진권현구 윤성호 기자
  • 삽화전진이 기자
  • 디자인&퍼블리싱정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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