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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저런 아야기

‘나부야 나부야’

by 까망잉크 2021. 11. 15.

78년을 해로한 노부부, 이들이 사랑을 유지해온 비결은 [왓칭]

진정한 부부의 연이란? 다큐멘터리 영화 ‘나부야 나부야’

조선일   윤수정 기자

입력 2021.11.15 10:59
 
 
다큐 영화 '나부야 나부야'의 주인공 김순규 할머니(왼쪽)와 이종수 할아버지, 그리고 이종수 할아버지가 부부의 모습을 본따 만든 눈사람. /넷플릭스

지리산 삼신봉 자락 해발 600m에 자리한 경남 하동군 화개면 단천마을. 이곳 숲속에 지어진 외딴집 대청마루에 홀로 앉은 이종수 할아버지는 먼저 간 아내, 김순규 할머니를 그리며 자주 다음과 같이 되뇐다. “나부야, 나부야”

‘나부’란 ‘나비’를 뜻하는 남쪽 지역 사투리다. 이종수, 김순규 부부는 각각 18살, 17살 때 중매로 만나 78년의 결혼생활을 함께 했다. 그 중 50년은 단천마을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6남매를 훌륭히 키워냈다. 그렇게 늘 곁에 있을 것만 같던 두 동반자가 헤어진 건 2015년 김순규 할머니(당시 97세)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였다. 이종수 할아버지에게 ‘나부’란 생전 호랑 나비를 좋아하던 아내를 그리워하는 애칭이자, 전설 속 환생의 상징이던 나비가 되어 부부의 재회를 이루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부야 나부야’는 이처럼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한 이종수·김순규 부부가 이별을 맞이하기 직전 7년 간의 시간을 담았다. 처음 이 노부부의 이야기는 2012년 KBS ‘세상사는 이야기’의 한 에피소드 주인공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촬영으로 감명을 받았던 최정우 감독이 2011년 11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두 부부의 삶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것이 다큐로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노부부의 이별 장면을 담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큐 촬영 도중 김순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영화 개봉 직전이던 2017년 이종수 할아버지(당시 98세)도 할머니의 뒤를 따랐다.

◇78년을 공유한 동반자의 빈자리

생전 이종수 할아버지는 김순규 할머니의 머리를 자주 빗어줬다. /넷플릭스

다큐의 시작은 이종수 할아버지의 짙은 그리움이다. 아내를 떠나보낸 그 해, 이종수 할아버지는 막내딸의 부축을 받으며 잡초가 무성한 단천마을의 집으로 돌아간다. 홀로 남은 아버지를 자녀들은 군산의 집으로 모시고자 했지만, 할아버지는 한사코 아내와 지내던 집이 편하다고 고집을 부린다. 하지만 막상 아내가 사라진 집에 홀로 앉아있게 된 할아버지는 한없이 불편하고 기운없는 모습으로 말없이 먼 산만 바라본다.

이런 할아버지의 행동은 그의 회상을 쫓아 과거를 비추는 카메라를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할머니가 떠나기 직전의 7년 간에도 부부는 연로했고, 거동이 불편해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매일 똑같은 집 앞 풍경도 대청마루에 나란히 앉은 부부의 수다가 더해지면 특별한 것이 되었다. 늘상 쑤셔오는 허리와 무릎의 고통도 부부는 서로의 걱정을 약처럼 더하며 위로를 통해 덜어갔다.

다큐는 특히 부부가 78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어떻게 서로를 위하는 방법을 켜켜이 쌓여 왔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화면 속 이종수 할아버지의 하루 시작은 늘 요강을 비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추운 날씨에 혼자 찬물로 요강을 씻어내는 남편을 보며 할머니는 미안해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하고 연약하니 당연히 자신이 챙겨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정작 자신 또한 지팡이를 짚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해가며 요강을 옮기면서 말이다.

이종수 할아버지가 직접 낫으로 나무를 깎아 만든 나무비녀를 김순규 할머니 머리에 꽂아주는 모습. /넷플릭스

이밖에도 할아버지는 밥짓기, 청소, 할머니 발톱깎기 등 온갖 집안일을 전담하며 사랑꾼 면모를 뽐낸다. 혹여 읍내 시장에 장을 보러 나가는 날에는 가장 먼저 할머니를 위한 내복부터 챙긴다. 돌아오는 길에도 할머니와 같이 먹을 생각에 붕어빵을 사서 품 안에 품고 온기를 가둔다. 때로는 손수 깎은 나무 비녀를 할머니에게 선물하며 “둘이서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같이 갑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가 아직도 좋냐는 질문에 김순규 할머니는 뭘 묻냐는 듯이 답한다. “그러니까 이제껏 살았지!”

 

◇노부부가 서로를 위하는 법

그렇다고 김순규 할머니가 받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고, 거의 걷지 못하지만 늘 “영감”을 외치며 할아버지의 동향을 살피는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할아버지 등에 파스를 붙이거나 힘없는 손가락으로도 가위질을 잘할 수 있도록 과자 봉지 한쪽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일 또한 할머니 전담이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다리가 되어준다면,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손이 되어준 셈이다.

영화 나부야 나부야

무엇보다 할머니는 언제나 남편에게 ‘고마워요’란 말을 잊지 않는다. 남편이 자신에게 해주는 모든 행동이 고맙고, 예쁘다고 말해준다. 촬영감독에게는 늘상 “어디 가도 우리 영감 같은 사람 없다”며 자랑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이토록 서로를 위하는 배려와 대화가 일상 곳곳에 배어있다 보니, 다큐 속 노부부는 자주 손을 꼭 맞잡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느린 만큼 소중한 부부의 시간

이종수 할아버지가 읍내 시장에 가서 사온 방한 양말을 신고 붕어빵을 나눠먹는 노부부의 모습. /넷플릭스

다큐는 7년의 세월을 60여분으로 압축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느린 호흡으로 전개된다. 거동이 불편한 노부부인 만큼 이동하는 장면만으로도 시간이 길어지는데 장면 전환 편집이 많지 않은 다큐의 특성이 더해지다 보니 더욱 그렇다. 김순규 할머니가 빨래 한 장을 걷기 위해 애를 쓰는 한 장면만도 보여주는 데 5분이 넘게 걸릴 정도다. 하지만 이런 특성이 오히려 노부부가 서로를 위하며 보내는 일상을 더욱 애틋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매일이 한없이 단조롭고, 느리게 흘러가는 이들 부부의 시간이 실은 이별의 시점을 목전에 둔 순간들이란 사실이 먹먹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다큐의 끝에서 카메라는 특히 할머니가 떠난 뒤 유난히 넓어진 대청마루, 두 켤레에서 한 켤레로 줄어든 디딤돌 위 신발을 비추며 부부의 보금자리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홀로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카메라 렌즈를 한번 거치고도 잦아들지 않는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이종수 할아버지의 그리움이 단순히 마루 위 옆자리가 빈 것만이 아닌, 그 곳에서 쌓아왔던 할머니와의 78년의 세월이 한 순간에 비워진 데에서 온 것이란 걸 알게 한다.

다만 다큐를 본 관객들은 이 이야기가 새드 엔딩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동반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노부부가 거쳐온 7년 간의 사계절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을 통해 답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사소한 이유로 다투고, 결국 이혼까지 다다르는 부부의 숫자가 매년 늘고 있는 요즘이다. 더군다나 ‘황혼 이혼’이란 말까지 등장한 시점에 78년 동안 한 동반자만을 사랑하며 해로한 부부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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