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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그때 그 사람] 대선판의 '베사메무초

by 까망잉크 2022. 1. 18.
 

[그때 그 사람] 대선판의 '베사메무초'

기사입력 2022.01.15. 오전 12:05

그때는 그랬다. 치열한 대통령 선거판에도 음악이 흘렀다. 한국 정치사 최고 거물들이 격돌한 1노3김의 대통령 선거전 이야기다.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1노3김. 엇갈린 민주화의 길에서 한국 정치사의 한 장을 남기고 간 이름들이다. 격전 속에서도 다소의 낭만이 있었고 절박한 상황에서도 여유가 보였던 인물들이다. '보통사람' 노태우 후보가 36.6%의 득표율로 당선이 됐다.

그때는 유권자에게 친숙한 유행가요와 동요를 후보자 이미지와 정책, 비전에 맞는 가사로 바꿔 로고송을 만들었다. 유세장과 거리의 홍보차량 카세트에서 로고송이 흘러나오고 운동원과 지지자들이 떼창을 부르기도 해 대통령 선거전이 마치 축제의 장처럼 되기도 했다.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로고송은 후보의 18번(애창곡)으로 유명했던 현인의 번안곡 '베사메무초'를 후보 이미지에 맞게 가사만 바꾸었다. '베사메 베사메무초/ 고요한 그날 밤 리라 꽃 피던 밤에'를 '노태우 노태우 후보/ 세계가 놀라던 6·29 펴던 날에/ 노태우 노태우 후보/ 민주화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로 바꾸었다. 이 밖에도 '빨간마후라' '영광 대한민국' '노태우 테마' '신데렐라' 등을 개사한 가사집까지 만들었다.

-김영삼 민주당 후보의 로고송은 '그대와 함께'로 싱어 송 라이터 김도향이 작사·작곡을 했다. '우리가 그대와 함께 있음은/ 그대와 우리 함께… / 영광 영광 김영삼/ 민주기수 김영삼'의 끝 소절 후렴부 가사를 김영삼 후보가 직접 '군정종식 김영삼/ 필승 필승 김영삼'으로 고치기도 했다.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는 동요 '자전거' 가사를 4절까지로 바꾸었다. 1절은 '따르릉 따르릉 함께 갑시다/ 김대중이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비토그룹 지역감정 독재의 유산/ 거부하고 해소하고 이겨냅시다…/ 서민의 벗 청년의 벗 역사의 부름/ 너도 밀고 나도 찍어 대통령으로'였다. 2절까지는 후보의 비전을, 3절은 노태우 후보, 4절은 김종필 후보를 겨냥한 공격적인 가사였다.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는 이선희의 히트곡 'J에게'와 '새마을노래'를 로고송으로 사용했다. 'J에게'가 후보 약칭인 JP 이미지와 맞아 제목만 'JP에게'로 바꾸고 가사는 그대로 썼다.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난 오늘도 조용히 그댈 그리워하네/ J 지난 밤 꿈속에 J 만났던 모습은/ 내 가슴 속 깊이….'

시대가 변하고 선거전 홍보 전략도 바뀌었다. 하지만, 선거판이 조금은 부드럽고 설레는 축제의 장이 될 수는 없는 것인지? 아쉬움이 남는다.

[신대남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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