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것의 기록들

재치 있는 풍자로 멋들어지게 살다 간 해학가, ‘동방삭’

by 까망잉크 2022. 1. 28.

 

[시니어신문][역사칼럼]

재치 있는 풍자로 멋들어지게 살다 간 해학가, ‘동방삭’

임나경 작가

승인 2021.12.29 19:50

십팔사략 속 인물들의 매력을 찾아서(30)

동방삭의 초상화 (그림출처 위키백과)

“가장 고통스러운 동물이 웃음을 발명했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대로 힘든 세상살이에 웃음은 고단함을 잊어버리게 하는 활력소다.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복잡하고 소란한 온갖 소식들이 신문에 가득한 요즘이다. 하나 항상 필자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그런 요란법석을 재밌게 담아낸 만평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건과 사고들을 익살맞게 표현한 글과 그림을 보고 한바탕 웃고 나면 절로 마음이 후련해진다. 골치 아픈 세상사에 이리저리 휘둘려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근심 가득한 인생 여정도 그리 고달프지는 않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뛰어난 작품을 통해 풍자와 해학의 미를 보여준 문학가들이 많으나, 오늘은 역사 속에 실존한 지혜로운 해학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 코미디언이 자신의 개그에서도 언급한 인물인 전한 시대의 기괴하고도 재미난 문인 ‘동방삭’이다. 동방삭의 자는 ‘만천’으로 지금의 중국 산시성인 평원군 염차현 출신이다. 그의 출생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전한다. 하나는 원래 동방삭의 아버지가 장씨였으나 동이 틀 무렵에 이웃집 여인이 그를 데려가 동방씨로 삼았다는 설과 아버지 없이 아들을 낳은 여인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다.

동방삭은 흔히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갑자가 60해이니 삼천갑자면 18만년이 된다. 즉, 그가 18만년을 장수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동방삭이 장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재미난 전설 또한 두 가지가 전해진다.

첫 번째는 한국에서도 전승된 전설인데, 점쟁이 혹은 천년 묵은 여우가 가르쳐 준대로 저승사자를 잘 대접하여 그의 수명을 저승사자가 삼천갑자로 고쳐주었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서왕모가 관리하는 반도원의 천도복숭아를 몇 개 훔쳐 먹어 오래도록 장수하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당인의 '동방삭투도상' (그림출처 언저리타임)과 김홍도의 '낭원투도' (그림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우리나라 경기도 성남시에는 동방삭의 수명과 연관된 또 하나의 전설이 전해져온다.

명부를 고치고 너무 오래 인간 세상에 있는 동방삭을 데려가기 위해 저승사자는 다시 그를 찾는다. 이때 동방삭이 조선 땅에 기거한다는 것을 알아낸 저승사자는 그를 잡기 위해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낸다. 어느 강가에 앉아 숯을 씻기 시작하는 저승사자, 한 사내가 그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보고 왜 숯을 강물에 씻는지 묻는다. 숯이 검어 희게 만들려고 씻는다는 저승사자를 보며 사내는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 본다고 깔깔댄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저승사자는 그 사내가 동방삭임을 알고는 냉큼 저승으로 데리고 가버린다. 아쉽게 저승사자에게 들켜 동방삭이 저승으로 끌려간 그 곳이 ‘탄천’으로 한때 이 지역 주민들은 이를 기념하는 지역행사도 열었다고 한다.

하나 어이없게도 장수의 대명사인 동방삭은 실제 62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삼천갑자를 산 신비의 인물로 후세에 전해진 것은 탁월한 언변과 재치로 한 ‘무제’에게 받은 오랜 총애와 그의 기괴한 언행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방삭이 역사에 기록된 첫 시작 또한 거창하고도 유별난데, 한 무제에게 올린 그의 특이한 자기 소개글 때문이다. 한나라 황제가 인재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당시 제나라 사람이던 동방삭은 삼천 자로 된 죽간에 상주문을 써서 올린다.

그 상주문은 두 사람이 들어야 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으나, 문장력이 뛰어나고 재밌었던지 기나긴 상주문을 무제는 ‘乙’자를 표시해가며 두 달 동안 부지런히 읽었다고 한다. 하루에 쏟아지는 상소만 해도 엄청날 터인데, 특별히 그의 글을 표식까지 하며 꾸준히 읽었다고 하니 동방삭의 길고 긴 자기 소개글이 무제의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이다.

어찌되었든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그를 황제는 상시랑에 명하여 곁에 둔다. 정사로 인한 무제의 고단함을 타고난 말솜씨, 재치와 해학으로 씻겨주는 마음 편한 말상대로서 동방삭은 군주의 곁을 죽을 때까지 지킨다.

‘반고’가 쓴《한서》의 <동방삭전>에 “황제의 기분을 맞추며 적절히 바른 소리를 많이 했다”라고 적혀있듯, 재담으로 무제의 귀를 즐겁게 하면서도 익살맞은 풍자로 간언을 올린 인물이었다. 동방삭은 후일 태중태부까지 오르나 이상하게도 무제는 그 이상 그에게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그를 험난한 권력다툼으로부터 보호하며 오래 곁에 두고픈 무제의 인간적인 욕심이 아닐까 싶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사랑을 받으면 주변의 미움도 따라오는 법, 황제의 곁에서 총애 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관리들에게 동방삭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공격의 대상이 된다.

무제는 그와 함께 어전에서 식사를 하였고, 식사 후 동방삭은 먹고 남은 고기를 품속에 넣어 귀가하여 옷이 늘 지저분했다. 이를 본 황제가 좋은 비단을 하사하였으나, 항상 그 비단들을 어깨에 매고 다니며 장안의 미녀들을 취하는데 낭비한다. 거기다 1년마다 곁에 둔 미녀들을 다른 여인들로 바꾸고, 무제에게 받은 재물들도 여인을 취하느라 탕진한다.

이를 본 신하들이 황제에게 그가 광인이라고 힐난하자 무제는 “동방삭이 전력을 다해 일에 몰두한다면 그대들 같은 사람 위에 서 있을 것이다”라고 따끔하게 일렀다고 한다.

엄격한 군주였으나 동방삭의

유머를 아낀 한무제 (그림출처 나무위키)

자유분방한 동방삭은 거침없는 언행으로 조정을 크게 들썩거리게도 만들었다. 당시에는 여름 복날이 되어 상시랑들에게 고기를 나누어주는 관례가 있었고, 이 복날 고기를 나누어주는 관리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어느 여름 상시랑들은 임금이 내리는 고기를 나누어줄 관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날은 그 관리가 저녁 늦게까지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동방삭은 본인이 직접 칼을 들고 자신이 가져갈 분량만큼 고기를 쓱 잘라낸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관리들에게 그는 싱긋 웃으며 “복날이라 빨리 귀가해야 한다”고 툭 내뱉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가버린다. 평소 동방삭을 싫어하던 관리들은 이를 놓치지 않고 하나도 빠짐없이 황제에게 보고한다.

무제는 그를 불러 모든 신하들 앞에서 군주의 하사품을 멋대로 가져간 무례함을 꾸짖으며 스스로 반성하도록 명한다. 이에 동방삭은 두 번 절하여 마치 스스로에게 꾸짖듯이 “삭이여, 어명을 기다리지 않고 하사품을 받아 갔으니 매우 무례하구나. 칼로 고기를 자르다니 아주 용감하구나. 고기를 자르되 많이 자르지 않았으니 매우 청렴하구나. 그리고 그것을 아내에게 주니 인정이 넘치구나”하며 되려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황당해하며 술렁거리는 주변의 관리들과 달리 무제는 이런 그의 배포와 재치 있는 말에 껄껄 웃으며 술 한 섬과 고기 백 근을 내렸다고 한다.

그 외 사형에 처할 뻔한 황제의 유모를 기지로써 살려준 일화, 무제에게 진상된 장수하는 신선주를 제멋대로 마시고도 벌 받지 않은 이야기, 황제 조카의 사형을 술로써 위로한 일 등 동방삭의 뛰어난 재치와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은 많이 전해져온다. 이 이야기들을 통하여 무제가 동방삭을 신하로 엄히 대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따스하고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아꼈는지를 알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엄격한 군주 중 하나인 무제가 예를 중히 여기지 않는 자유분방하고도 무례한 천방지축을 마음의 경계를 풀고 너그럽게 대한 것은 유일한 황좌를 지켜야하는 고독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천진한 마음으로 자신을 기쁘게 하는 그를 잃고 싶지 않은 소박한 바램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을 다 가진 황제 또한 위로받고 싶고 평온한 작은 행복을 지키고픈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것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물론 글을 배운 서생이자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서 동방삭 또한 권력에 야망이 있었던 듯싶다. 부국강병책을 황제에게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서운한 마음을 <답객난>과 <비유선생지론>에 남겼다고 한다. 한평생 황제의 총애 속에 살아도 문인으로서 권력욕은 희미하게라도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동방삭의 전설이 전해지는 성남시의 탄천 (사진출처 위키백과)

평소 재사와 풍간으로 황제의 웃음 담당자로서 활약하던 동방삭은 죽음에 이르러 늘 익살스런 모습과 달리 진지하게 “아첨과 참언을 멀리하라”고 충언했다고 한다. 아마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직감하여 그를 아낀 군주에 대한 진심 가득한 보답이었으리라. 얼마 뒤 동방삭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인간은 누구나 기쁘고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삶의 여정은 우리에게 안락한 평온을 늘 보장해주지 못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인생의 고개를 힘겹게 넘어가며 지친 심신을 달래줄 작은 희망과 안식처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게 삶이다. 어차피 감내하고 걸어가야 할 길이라면 생에 대한 긍정의 희망고문과 함께 수없이 덤벼드는 고통들을 쉬이 넘길 수 있는 지혜로운 해학과 웃음을 꼭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곧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다가온다. 임인년에는 모든 독자분들의 건강과 더불어 바라시는 일들이 다 이루어지시기를 기도하며, 지난 2년간 숨 막히던 고통의 시간들을 쉬이 잊을 수 있는 기쁜 일들이 2022년에는 가득하시기를 열망한다.

[임 나 경 (林 娜 慶)]

소설가, 각본가.

<출간작>

‘곡마’, 황금소나무, 2016

‘대동여지도 : 고산자의 꿈’, 황금소나무, 2016

‘사임당 신인선 : 내실이 숨긴 이야기’, 황금소나무, 2017

‘댐 : 숨겨진 진실’, 황금소나무, 2017 (예스24 국내 젊은 작가들의 주목할 만한 소설 선정)

‘진령군 : 망국의 요화’, 도서출판 밥북, 2017 (제24회부산국제영화제 2019아시아필름마켓북투필름 선정작)

<시나리오>

방문객(The Visitor), 2017. 제8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 초청작

미라클(The Miracle), 2018.

출처 : 시니어신문(http://www.seniorsinmun.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