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1병에 6000원? 한잔의 위로조차 사치가 됐다
[아무튼, 주말]
소주 값 인상한 지 한 달째
종로·영등포 골목 가보니
지난 5일 오후 7시 서울 영등포역 뒷골목. 10평 남짓한 실내 포장마차에 중년 남성 넷이 들어섰다. 소주 두 병 시켰을 뿐인데 벌써 계산서엔 만원이 찍혔다. 일행 중 한 명인 이모(55)씨는 노숙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밥사랑 열린 공동체’에서 일한다. 그는 “한 달 생활비가 30만원 안팎인데, 소주 한 병에 5000원이니 친구 만나 얘기 나누기도 부담스럽다”며 “20일(생계 급여 지급일)쯤 되면 계란말이나 황도 시켜 먹겠지”라고 했다.
소주 가격이 인상됐다. 식당에서 파는 소주 가격은 4000~5000원에서 5000~6000원으로 올랐다. 편의점에서 파는 소주는 1800원에서 150원 더 비싸졌다. 서민의 술이었던 소주 가격이 오르면서, 인사처럼 건네던 ‘한잔하자’라는 말도 예사로 할 수 없게 됐다. 한잔의 위로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이들을 지난 5일 서울 영등포와 종로에서 만났다.
같은 날 오후 9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길바닥에 소주 3병을 사이에 두고 40~60대 남성 다섯 명이 쪼그려 앉아있다. 안주는 편의점 스낵 과자 한 봉지였다. 이들에게 ‘왜 식당 아닌 길거리에서 마시냐’고 묻자, 두 사람이 고함에 가까운 소리로 동시에 답했다. “편의점 가면 1950원인데 술집에서는 5000원입니다. 이 소주 한 병이!” “5병 먹을 거 4병밖에 못 먹지. 그래서 프레시(상대적으로 도수가 낮은 소주) 먹을 거 더 센 거 먹고.”
이들 중 김대현(42)씨가 종이컵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비싸면 안 먹으면 될 거 아니냐고 말들 하시죠. 17년 전 회계사 공부를 하다 뇌전증이 왔어요. 내 능력으론 안 된다는 걸 알았죠. 고시원에 살면서 괴로우니까 한 잔, 우울해서 한 잔. 술을 줄일 순 있어도 안 마시고는 살 수가 없게 되었어요.” 옆에 있던 이길환(62)씨는 “우리야 저잣거리 앞에서 이렇게라도 먹지만 홀몸 어르신들은 술 사들고 혼자 집에서 먹어요”라며 “다른 사람에겐 고작 몇 백원 오른 것일지 몰라도 누군가는 고독으로 내몰리는 거죠”라고 말했다.
소주 가격이 오른 건 10년 만에 소주 원료인 주정 값이 인상됐고, 병 뚜껑 가격과 공병 보증금도 줄줄이 오른 탓이다. 지난 5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 물가 3월 동향’에 따르면 소주 가격은 전월 대비 7.5%나 올랐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그동안 원료 가격 인상을 포함해 소주 가격 상승 요인이 많았지만, 소비자들 부담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출고가를 7.9% 인상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소주 가격 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민도 일부 있었다. 종로구 사직동에 거주하는 김창수(55)씨는 “나도 손님 입장이라 부담스럽지만, 물가가 전반적으로 다 올랐으니 술값도 오르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익선동 인근에서 술을 마시던 노모(50)씨도 “자영업자들이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으니 그들 몫이 생긴다면 소주 가격이 일부 인상되어도 감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탑골공원 옆 길바닥에서 벌어진 술자리도 어느덧 2시간째, 이길환씨는 소주 빈 병 3개를 가로수 앞에 나란히 세웠다. “요새 빈 병이 100원이에요. 병 주워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힘든 분들이 가져가시라고 여기다 놔요. 새벽에 어두워서 못 보실라, 혹시 지나칠 일 없도록 눈에 띄게 둬요.” 이씨의 빈속에 안주 대신 찬 소주가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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