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것의 기록들

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 〈1〉 길을 나서며

by 까망잉크 2022. 8. 5.

북한은 왜 유해 송환 제의를 거부했을까…씁쓸한 6·25 상흔

 

입력 2022.04.16 00:02 업데이트 2022.04.16 00:11

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 〈1〉 길을 나서며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됐지만 잊힌 전쟁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흔적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잘 알려진 임진각이나 땅굴, 비무장 지대의 전망대 외에도 그 흔적은 일반인들의 막연한 기억보다 훨씬 많다. 여행은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한국전쟁을 답사여행과 연결해 새로운 연재 ‘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을 시작한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에 있는 북한군 묘역. [사진 윤태옥]

나지막한 야산의 능선을 살며시 벌려준 작은 골. 검은 갈색의 막돌 폐허가 눈에 들어온다. 건물 바닥과 벽체 일부만 남아있어 묘한 상상력을 끌어당긴다. 폐허 서쪽에는 그리 높지 않은 굴뚝이 낯선 방문객에게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아무리 봐도 우리의 전통은 아닌 서구 건축의 냄새가 난다.

도로변에 안내판이 없으면 찾기 어렵고, 찾아온들 어떤 폐허인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안내판에는 ‘연천 유엔군 화장장 시설, 국가등록문화재 제408호’라고 되어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전사자들을 화장하기 위해 1952년 건립하여 휴전 직후까지도 사용한 화장시설이며, 건물의 벽과 지붕이 훼손되었으나 가장 중요한 화장장 굴뚝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 있다. 화장장이란 뉘앙스와는 달리 정갈하게 관리되어 있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산 77-2번지.

중국군 유해 541구는 본국으로 돌아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 위치한 유엔군 화장장 시설. [사진 윤태옥]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분명히 남의 것이었을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시신을 고국으로 실어 가기는 어려운 외국군 병사들의 유해가 뜨거운 불길 속에 고운 재로 가라앉은 곳. 어쩌다가 타국 땅에서 죽었고 낯선 곳에서 화장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인지. 내 생각 속에서는 우리 땅에서 벌어진, 얽히고설킨 현대사의 장면들이 짧은 순간에 파노라마로 흐른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6-1, 37번 국도변에는 ‘북한군 묘역’이란 표지가 깔끔하게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북한군·중국군 묘지’라는 안내판이 또 하나 설치돼 있다.

‘이곳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6·25전쟁 이후에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묘지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네바 협약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1996년 6월에 묘지를 조성하였으며 총면적은 6,099㎡로 1묘역과 2묘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2묘역에 안장되었던 중국군 유해 541구는 총 3회에 걸쳐 (2014.3.28~2016.3.31)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묘역에는 B4 용지 정도 크기의 석판 수십 개가 오와 열을 맞추고 햇볕을 받고 있다. 석판에는 ‘북한군126, 2000.11.30, 무명인,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동’과 같은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북한군30, 1996.6.14, 소위 권호신, 1·21사태 무장공비’와 같이 계급과 이름이 명시된 것도 있다.

무명인이 훨씬 많다. 이 작고 키 낮은 묘비들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년 가까이 지났건만 아직도 생생하게 진행형인 남북 충돌의 현대사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2019년 4월 3일에 열린 중국군 유해 인도식. 2014년 3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인도식은 8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중앙포토]

북한군 묘역 안쪽으로 중국군 묘역이 있다. ‘중국군 575~655, 2009.5.28, 중국군 81구, 2014.3.28 본국송환’이란 석판도 있고 ‘무명인, 본국송환’과 같이 기록된 것도 있다. 중국군 병사도 유엔군 화장터에 실려 온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남의 나라 전쟁에서 죽음으로 마감 당한 인생들이다. 중국군의 유해 송환은 2013년 6월 국빈으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송환 의사를 전달한 이후 지난해까지 8차례 이루어졌다. 당시의 정치·외교적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우리 땅에서 수습된 외국군 유해를 고향 나라에 보냈고, 보냈다고 흔적을 남겨둔 것은 잘한 일이다.

돌아 나오면서 북한군 묘지를 다시 쳐다보면 입맛이 쓰다. 중국군 유해는 60년 만에라도 본국으로 돌아갔으니 망자나 유족에게는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에 비견하면 같은 핏줄인 북한군은 ‘적’의 땅에 그대로 묻혀 있다니. 그것도 우리 정부의 송환 제의를 북한 당국이 외면해서 그렇다고 하니 더욱 씁쓸하다.

이 두 곳의 한국전쟁 흔적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다. 나도 지난 1년 동안 휴전선 일대에서 한국전쟁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내가 우리 현대사에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준다. 이런 낯 뜨거운 자각은 휴전선 답사 내내 내 걸음을 멈칫거리게 했다.

2019년 4월 1일에 열린 중국군 유해 입관식. [뉴시스]

나는 십수 년 동안 중국을 여행한 경험과 기록을 토대로 ‘변방의 인문학’이란 글을 지난해 가을까지 3년 반 동안 중앙SUNDAY에 연재했었다. 그런데 2019년 연말에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국경이 닫히면서 나의 답사여행은 국내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에는 서해와 남해에서 바다의 역사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서해·남해 다음에, 북해가 아닌 북쪽에는 무엇이 있냐는 친구의 코멘트를 계기로 휴전선 답사에 나서게 됐다.

처음에는 한강하구 교동도에서 강원도 고성군까지 5박 6일에 걸쳐 훑어나갔다. 답사를 조금 풍성하게 하려고 한국전쟁사를 손에 잡히는 대로 하나하나 찾아 읽었다. 다섯 차례의 휴전선 답사와 세 차례로 나눠서 다닌 38선 종주, 백령도를 비롯한 대여섯 번의 서해 도서 답사, 그 외의 대전형무소 탐방 등 총 60여 일간 답사를 다녔다. 지금은 연재 글을 시작하면서 다시 하나하나를 찾아다니고 있다.

한국전쟁의 흔적을 찾아 그 속살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전쟁을 배제하고 평화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실제 도달 가능한 평화란, 동화나 환상 같은 상태가 아니다. 갈등으로 생기는 문제를 무력으로는 해결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기 위해, 무력으로 해결하다가 해결은커녕 문제들을 오히려 치명적으로 악화시킨 한국전쟁을 곱씹어보자는 것이다. 한국전쟁은 38선을 깨는 북한의 남침이 실패했고, 38선을 돌파한 북진 역시 실패했다. 직선 38선이 비슷한 지역에서 곡선의 군사분계선으로 바뀌었을 뿐 남북은 치명상에 치명상을 안고 불구가 되지 않았는가.

러·우크라 전쟁 끔찍한 속성 보여줘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내가 한국전쟁을 되새겨보는 두 번째 의의는 전쟁 자체에 대비하는 것이다. 전쟁은 군대가 출동해서 수행하는 전투의 총합만이 아니다. 그 나라의 모든 사람은 세금이든 징집이든 징발이든 사업이든, 일상을 포함한 모든 것에서 전쟁에 직접 결부된다. 지금 당장 전쟁이 발발해도 나는 전선으로 징집되지는 않겠지만 나와 무관한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 나라가 전쟁을 회피한다고 해서 전쟁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사실 전쟁은 전 국민의 것이라는 명제는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한국전쟁의 참극과 그 후유증을 너무나도 끔찍하게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전쟁을 포함해 국가운영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는 민주시민으로서 전쟁을 한걸음 정도는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이해의 하나로 전쟁의 흔적을 돌아보고, 실제 우리가 겪은 전쟁은 어떠했고, 훗날 원치 않는 전쟁이 발발했을 때 어떠한 대처를 해야 하는가를 미리 짚어보자는 것이 여행객이 이런 글을 쓰는 소박한 이유다.

휴전선을 답사하면서 『60년 전, 6·25는 이랬다』는 35명의 체험담을 수록한 단행본을 읽었다. 맞다. 그때는 그랬다. ‘그때는 그랬다’는 것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 그러니 오늘도 그러하거나 오늘 또는 내일에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나 후손이 살아갈 미래도 마찬가지다. 그러하거나 그러하지 않아야 한다.

글을 준비하는 동안 대선을 거쳐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전 정부와는 크든 작든 정책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도 한국전쟁을 다시 한번 리뷰하는 것도 작지만 나름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쟁은 그 끔찍한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외가 없다. 하루속히 전쟁이 멈추기를 바라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는 한국전쟁을 반추하게 하는 또 하나의 레퍼런스가 되는 게 사실이다.

이제 독자들을 모시고 길로 나선다. 무거운 주제지만 가능하면 가벼운 맘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이 글의 의도의 하나는 휴전선 일대도 여행할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뜻도 있으니.

윤태옥 답사여행객 kimyto@naver.com

지난 15년 동안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역사와 자연과 문화를 찾아다니고 있다. 최근 2년은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휴전선 지역, 바다의 역사를 주제로 한 서해·남해·제주 지역을 지속해서 답사했다. 올해에는 바다의 역사 해외 여정을 시작한다. 여행하면서 『변방의 인문학』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독립운동사』 『길 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 『중국 민가기행』 『중국식객』 등을 펴냈다.

 

중앙선데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