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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by 까망잉크 2022. 8. 27.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아무튼, 주말]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2.08.27 03:00

 
 
일러스트=김영석

지금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신문에서 본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대홍수로 수많은 마을과 전답이 끝 간 데 없이 물에 잠긴 현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손으로 목 뒷덜미를 잡고 망연자실하여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입니다. 평범한 사진 한 장에 지나지 않지만, 대통령은 수해를 입은 이재민과 아픔을 함께하고 국민도 그 안타까움에 공감할 사진입니다. 이처럼 사진 한 장이나 말 한마디가 긴 여운이나 파장을 남기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작년 7월 서부 독일에 큰비가 내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가옥들은 휩쓸려 갔습니다. 당시 9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며 차기 총리로 유력했던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주지사 아르민 라셰트는 수해 현장에서 파안대소하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히는 바람에 국민의 신뢰를 잃어 선거에서 패배하고 총리직은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것은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인터뷰하는 장면의 배경에서 포착된 것이었으나 언론은 이를 놓치지 않았고 국민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한편 서독 5대 총리 헬무트 슈미트는 함부르크시 내무 책임자(Innensenator)로 근무하던 1962년 함부르크 대홍수 때 구원자 역할을 멋지게 하였습니다. 효과적 위기관리로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명성을 떨쳤습니다. 당시 헌법상 국내 문제에 군대 투입을 금지하고 있었으나 슈미트는 법적 근거를 따질 수 없다며 경찰, 구조대 외에 군대를 동원하였습니다. 그 결과 수천 명의 인명 피해를 막았습니다. 해결사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그 일은 그의 정치 역정에서 두고두고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7대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2002년 9월 선거를 앞두고 결코 재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8월 중순 수세기 만의 큰 홍수가 발생하였습니다. 슈뢰더는 선거운동을 미루고 장화를 신고 작업복을 입고 현장을 열심히 누볐습니다. 슈뢰더는 위기관리자로서 미디어에 비치면서 유권자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특히 구동독 지역에서 더 많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엘베강과 주변 샛강의 황톳색 물결이 독일에서 사라져가는 연대(連帶)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선거 승리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세월호 침몰로 박근혜 정부는 온갖 비난과 공격을 받았습니다. 왜곡되고 과장된 내용이 많이 있었지만, 초기에 현장 대응이 미흡하였고 중앙정부도 안일한 대응으로 그 빌미를 제공하였습니다. 우선 유족들 마음을 확실하게 위로하지 못하고 심지어 정부 나름의 원칙적 대응이 유족 측과 대립하는 모습으로 비쳤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희생자 대부분이 어린 학생이고 침몰 당시의 참혹한 상황이 휴대폰으로 전해진 사건인 만큼 정부는 국민과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좀 더 특별하게 대처해야 했습니다. 정부 수뇌들이 사건 발생 초기부터 유족들을 부둥켜안고 우는 심정으로 사건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아무튼 일부 정치 세력 등이 그 틈새를 파고들어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이것이 정권 붕괴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정치 지도자가 재난 등 국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국정 운영의 성패가 갈립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진정성이 있는 대처는 국정 동력을 부여할 것이고, 보여주기식 쇼맨십은 오히려 그 반대가 될 것입니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겸손한 자세가 성공한 정부를 만드는 길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로마서 12장 15, 16절)

고위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물론 우리 모두 마음에 새겨야 할 경구(警句)입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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