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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모던 경성]경성의 ‘자동차 주막’ 영업비결? ‘가솔린걸’

by 까망잉크 2022. 8. 28.

[모던 경성]경성의 ‘자동차 주막’ 영업비결? ‘가솔린걸’

[뉴스 라이브러리 속 모던 경성] 교사 출신까지 전업
손님들의 은근한 눈길 부담

 

입력 2021.07.10 06:00

 
 

8등신 여성 모델이 고개 숙여 손님을 맞고, 핫팬츠 차림 여대생들이 창유리를 닦아준다?

1990년대 주유소에선 치열한 판촉전이 벌어졌다. 1993년 정부가 서울 등 6대도시에 대해 주유소간 거리제한을 없애는 등 규제를 완화하면서 주유소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기 때문이다. 화장지, 생수 서비스는 물론이고 치어리더까지 고용한 ‘미인계’가 활개쳤다. 판촉비가 마진에 육박할 만큼 출혈 경쟁을 벌인 끝에 문 닫는 주유소가 속출했다.(조선일보 2018년 7월11일 김명환의 시간여행, ‘수단 방법 안 가렸던 주유소 판촉전…’ )

2000년대를 목전에 두고 벌어진 작은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주유소 판촉전쟁에 미인계를 동원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은 아니다. 90년전 경성으로 거슬러 가본다.

2011년 서울 여의도의 한 주유소에서 여직원이 자동차에 연료를 넣고 있다. 90년전 경성 거리에 등장한 주유소엔 '가솔린 걸'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손님을 맞았다./조선일보 DB

'18~19세의 꽃같은' 가솔린 걸

선일보 1933년 11월25일자 ‘저물어가는 1933 가두여인’ 주인공은 ‘가솔린 걸’이었다. 1931년말 경성 시내에 등록된 자동차는 1000대쯤 됐다. 그해 여름 ‘깨솔린 써ㅡ비스 스테슌’이 등장, 경성 역앞과 종로4가에도 주유소가 생겼다. 주유소 점원은 남자를 쓰지 않고, ’18~19세가량의 꽃 같은 여성'을 썼다. 이른바 ‘가솔린 걸’이다. 자동차 자체가 희귀한 시대인데다 주유소란 신종 업종에 젊은 여성이 일하고 있으니 관심이 쏠렸다.

‘신동아’(1932년 12월호)는 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사립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인텔리 여성이 ‘가솔린 걸’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소래섭,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158쪽 재인용) 당시로선 고학력인 고보 중퇴생인데다 교사까지 했던 여성이 전업할 정도였으니 꽤 괜찮은 직업처럼 보인다.

조선일보 1932년1월5일자에 실린 '깨소린 걸의 십자로에서 외치는 소리'. 화장도, 좋은 옷도 필요없다면서 기름 속에 파묻혀 일하는 게 힘들다고 고백했다.

'생명보다 중한 피부가 거칠어지는 게 쓰라려'

하지만 젊은 여성이 온종일 기름 냄새 맡으며 일하는 게 쉽진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여성들과 같이 고운 의복이나 다른 사치품은 이곳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날마다 손에 기름칠을 하고 옷에 때가 묻어서 천하기로는 제일일 것같습니다.’

실업학교를 마치고 가정상 피치못할 사정으로 이곳에 몸담게 됐다는 이 ‘가솔린 걸’은 ‘종일 앉아만 있다가 몸을 움직이는 것은 다만 자동차에 기름을 부어주는 것 30여회로써 유일의 운동을 삼습니다’ ‘직업이 너무 단조하여 취미가 없고, 전신이 기름 속에 파묻혀있기 때문에 생명보다 더 중한 피부가 거칠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쓰라립니다’라고 호소한다. (조선일보 1932년 1월5일 ‘깨소린걸의 십자로에서 외치는 소리’) 월급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남들과 같이 화장도 하여야겠고, 의복도 남부끄럽지 않게 입어야겠지만 이곳에서 생기는 수입으로는 도저히 몽상도 못할 일’이라고 했다.

 
 

'한떨기 웃음을 던져주는 것도 사회봉사'

가솔린 걸들은 ‘감정노동’에 시달렸다. “운전수들 말씀마세요. 자기네들은 손님들께 아니꼬운 꼴을 보니까 그담엔 그들이 또 우리들께 와서 별 아니꼬운 꼴을 다보여줘서 질색이에요.” 경성부청 앞 ‘까솔린 스탠ㅡ드’에서 일하는 ‘까솔린 양’은 푸념한다. 배화보통학교를 나왔다는 전순업양은 그럴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호호…할 수있나요. 저쪽은 그래도 손님이고 우리는 장사니까 살살 달래는 수밖에….”(조선일보 1939년4월26일 ‘대상부대는 몰려든다. 도시의 오아시스로’)

월간지 ‘여성’(1938년7월호 ‘직장의 명랑화’)에 등장한 ‘가솔린걸’ 이숙자(가명)양은 미소로 반기면 손님들이 무슨 호의나 보이는 줄 알고 은근한 눈을 주고간다고 하소연한다. 곧 “재미가 어떠세요. 어느날 노십니까.자동차 가지고 외시러올게 드라이브나 하실까요” 하는 수작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먼지가 날리는 거리로 핸들을 잡고 시달려 지내다가 가솔린을 사러 들어서는 운전수에게 한떨기 웃음을 던져주는 것은 사회 봉사의 한가지라고 믿는다’고 당차게 선언한다. ‘거리의 자동차 주막ㅡ여기에는 명랑한 직업 부인의 웃음섞인 민활한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조선일보에서 발행한 '여성' 1938년7월호에 실린 '가솔린 걸'의 항변. 한 가솔린 걸은 남성들의 은근한 눈길이 부담스럽다고 고백했다.

 ‘얼마나 씩씩하고 장쾌한 직업이냐’

몸도 마음도 고달픈 ‘가솔린 걸’을 치켜세우며 찬사를 바치기도 했다. ‘얼마나 씩씩하고 장쾌한 직업이냐. 거리로 걸러가는 요염백태의 뭇여성들아! 위대한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라! 그리고 너희들도 목말라서 받는 자동차와 같이 새 ‘삶’의 생명수를 받으라! 그러면 너희에게는 거짓없는 참다운 새 ‘삶’이 꼭 올 것이다.’(1933년 11월25일 ‘십자로에서 활약하는 깨소린 걸’) 신분이나 외모가 아니라 노동으로 인정받는 ‘모던 걸’의 탄생이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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