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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그리고 못 다한 이야기

살아보니 그런대로

by 까망잉크 2022. 8. 31.



살아보니 그런대로


세수 남 보라고 씻는가?
머리 감으면 모자는 털어서 쓰고 싶고
목욕하면 헌 옷 입기 싫은 기 사람 마음이다.
그기 얼마나 가겠노만은 날마다 새 날로 살라꼬
아침마다 낯도 씻고 그런 거 아이가.
안 그러면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낯을 왜 만날 씻겠노?

고추 모종은 아카시 핀 뒤에 심어야 된다.
배꽃 필 때 한 번은 더 추위가 있다.
뻐꾸기가 처음 울고 세 장날이 지나야

풋보리라도 베서 먹을 수 있는데
처서 지나면 솔나무 밑이 훤한다 안 카더나.

그래서 처서 전에 오는 비는 약비고,
처섯비는 사방 십리에 천 석을 까먹는다 안 카나.
나락이 피기 전에 비가 쫌 와얄 낀데
들깨는 해 뜨기 전에 털어야

꼬타리가 안 뿌사지서 일이 수월코,
참깨는 해가 나서 이슬이 말라야

꼬타리가 벌어져서 잘 털린다.

그나저나 무신 일이든 살펴봐 감서 해야 한다.
까치가 집짓는 나무는 베는 기 아니다.
뭐든지 밉다가 곱다가 하제.
밉다고 다 없애면 시상에 뭐가 남겠노?

낫이나 톱 들었다고 살아 있는 나무를 함부로 찍어 대면
나무가 앙 갚음하고 괭이나 삽 들었다고 막심으로
땅을 찍으면 땅도 가만히 있지 않는 기다.

세상에 씰데없는 말은 있어도

씰데없는 사람은 없는 기다.
하매 나뭇가지를 봐라.
곧은 건 괭이자루,
휘어진 건 톱자루,
갈라진 건 멍에,
벌어진 건 지게,
약한 건 빗자루,
곧은 건 울타리로 쓴다.

나무도 큰 넘이 있고 작은 넘이 있는 것이나,
여문 넘이나 무른 기 다 이유가 있는 기다.
사람도 한가지다. 생각해 봐라.
다 글로 잘나면 농사는 누가 짓고,

변소는 누가 푸노?

밥 하는 놈 있고 묵는 놈 있듯이,
말 잘 하는 놈 있고
힘 잘 쓰는 놈 있고,
헛간 짓는 사람 있고
큰 집 짓는 사람 다 따로 있고,
돼지 잡는 사람, 장사 지낼 때
앞소리 하는 사람 다 있어야 하는 기다.
하나라도 없어 봐라. 그 동네가 잘 되겠나.
내 살아보니 짜달시리 잘난 넘도 못난 넘도 없더라

하기사 다 지나고 보니까
배우나 못 배우나 별다른게 없더라.
사람이 살고 지난 자리는 ,
사람마다 손 쓰고 마음 내기 나름이지
많이 배운 것과는 상관이 없는 갑더라.
거둬감서 산 사람은 지난 자리도 따시고,
모질게 거둬들기만 한사람은

그 사람이 죽고 없어도 까시가 돋니라.

우짜든지 서로 싸우지 말고 도와 감서 살아라 캐라.
다른 사람 눈에 눈물 빼고 득 본다 싶어도

끝을 맞춰 보면 별거 없니라.
누구나 눈은 앞에 달렸고,

팔다리는 두 개라도
입은 한 개니까

사람이 욕심내 봐야 거기서 거기더라.
갈 때는 두 손 두 발 다 비었고.

말 못하는 나무나 짐승에게 베푸는 것도

우선 보기에는 어리석다 해도
길게 보면 득이라.

모든게 제 각각,
베풀면 베푼대로 받고,
해치면 해친 대로 받고 산지라.
하매 사람한테야 말해서 뭐하겠노?

내사 이미 이리 살았지만

너그는 우짜든지 눈 똑바로 뜨고
단디 살펴서,

마르고 다져진 땅만 밟고 살거라이.
개가 더버도 털 없이 못 살고,
뱀이 춥다꼬 옷 입고 못 사는 기다.
사람이 한 번 나면,

아아는 두 번 되고 어른은 한 번 된다더니,
어른은 되지도 못하고 아아만 또 됐다.
인자 너그 아아들 타던 유모차에 손을 짚어야 걷는다.

세상에 수월한 일이 어디에 있나

하다 보면 손에 익고 또 몸에 익고
그러면 그렇게 용기가 생기는 게지
그렇게 사는 게지

-김상순 어머니의 구술을 아들 홍정욱님이 옮겨 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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