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e 7..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 3
11명의 후궁을 거느린, 태종(제 3대왕 1367~1422)
Sep 16. 2022
테종은 개국공신이었지만, 조선건국이후 철저히 소외당하게 되면서 이성계의 두 아들과 사위 그리고 정도전까지 죽이는 왕자의 난을 일으킵니다.
역대 조선 왕 중 가장 강력한 왕권을 지닌 철혈(鐵血)군주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데요. 행정최고기관인 의정부(議政府)와 군사통괄기관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 최고의 법사(法司)부 의금부(義禁府)를 설치하여 관제개혁으로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태종은 의료시스템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스스로가 잘못된 처방에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텐데요. <실록>에는 태종6년 1월 5일에 “태종이 어의들이 조제한 ‘상표초원(桑螵蛸元)’이라는 약을 먹고 구토하고 정신이 황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약은 ‘소변이 뜨물과 같고 하루 수십번 누며, 심신이 어지럽고 초췌하는 증상’를 치료하는 처방입니다. 처방 약재들중 ‘상표초(桑螵蛸)’는 뽕나무에 기생하는 사마귀의 알집인데, 불에 구워 사용하지않으면 설사 등의 부작용을 보입니다. 아마, 어의들이 이러한 포구(炮灸 약재의 수치법제과정)를 제대로 하지않아서 부작용이 생겼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바른 의학적기반을 위해 의녀제도의 기초를 닦고 의료인력을 늘리며, 중국에서 동인(銅人 구리로 만든 사람형상)을 들여와 공부시켰습니다. 또한, 왕비의 난산(難産)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 한약을 먹여 무사히 순산(順産)하는 대책을 세우기도 합니다.
태종 12년 6월 23일 <실록>의 기록에는 “중궁(中宮)이 매양 난산(難産)하는 질병이 있어서 내가 걱정하였더니, 이제 경 등이 성의있께 약을 공급함에 힘입어서 근심이 없으니, 내가 심히 기뻐한다.”고 전합니다.
그는 아버지 태조나 형 정종만큼은 아니라, 태종 4년까지 사냥을 다닐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가졌을 것으로 유추됩니다.
하지만, 평소 이씨왕조의 가족력인 풍질(風疾)을 앓았고, <실록>에, 태종은 종기, 풍질, 안질, 이질, 견비통, 상지냉통, 역절풍, 항강증 등 많은 질병으로도 고생하였다고 전합니다.
또한, 무려 11명의 후궁이 있을 정도로, 매일같이 술자리를 하고 후궁과의 잠자리는 체력곶간을 비워가는 일상일 뿐이었을 것입니다. 처방사고가 났었던 위 ‘상표초원(桑螵蛸元)’이 바로 태조의 과도한 성생활에 치료약으로, 비뇨기계통을 강화시키는 약이었습니다.
세종과 매사냥을 다녀오신 후, 고열과 혼수상태로 시름시름앓다가 56세에 폐렴으로 승하하셨습니다. 아마, 매서운바람 속 사냥일정에서 현재의 코로나19나 신종플루처럼 급성 감염성 열병이 사망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할 수 있겠습니다.
글빚는 한의사 알리고출간작가
<알.쓸.신.기.동의보감>,<치매백문백답>,<알파고 동의보감>,<뇌건강을살리는계절음식>등의 몇몇 책들을 국내외에출간하였습니다.한의사,칼럼니스트,강사,콘텐츠개발자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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