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20] '건전가요' 아닌 노래 트는 택시 단속… 발라드 음반에 '淨化의 노래' 삽입도
"모든 버스와 택시에서는 '새마을 노래' 등 건전한 음악만 방송하도록 지도하라." 1974년 8월 5일 교통부가 시·도에 내린 특별 지시다. 교통부는 '대중교통 수단이 퇴폐적 저속가요 등을 요란스럽게 차내에 방송해 손님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며 '암행 단속을 실시해 적발되면 행정처분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경향신문 1974년 8월 5일자). 운전기사가 구슬픈 트로트라도 틀다가 걸리면 혼쭐이 날 판이었다. 제3공화국 시절의 건전가요 '권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 실감하게 한다. 이 무렵 서울의 한 경찰서는 유치장에 종일 건전가요를 틀었다. 이 아이디어를 냈다는 서장은 '응어리진 유치인들 가슴을 풀어 참다운 인간으로 개조시키려는 목적'이라고 밝혔다(조선일보 1976년 11월 3일자).
![](https://blog.kakaocdn.net/dn/45IQt/btrP7NKlozf/hO5KajYAfmaU2SvVhCIWrk/img.jpg)
정부 주도로 건전가요가 만들어진 건 1957년쯤부터다. 1970년대 들어선 새마을운동과 발맞춰 더 강력하게 권장된다. 문공부는 1972년 '명랑한 사회 분위기를 이룩하기 위해' 건전가요 122편을 제정하고 범국민적 개창 운동을 폈다. 반공, 건설, 충효 등 정부가 외치는 이념과 가치를 담은 노래만 부르고 들으라는 이야기였다. 사랑 노래가 대부분인 가요는 '저속·퇴폐'로 몰렸다. 1975년엔 '아침이슬' '물좀 주소'등 숱한 노래가 금지곡이 됐다. 건전가요와 금지곡은 '노래 통제 정책'이라는 동전 하나의 양면이었다.
1980년대 들어선 가요 음반마다 건전가요를 의무적으로 넣어야 하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됐다. 음반협회가 사회정화위원회 등의 '협조' 요청에 응해 자율적으로 넣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진짜 자율적으로 건전가요를 안 넣고도 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 심의를 통과할 수 있다고 여긴 대중음악인은 아무도 없었다. 의무를 이행하는 방식도 갖가지였다. 상당수 음반은 해당 가수와 무관한 가수의 건전가요를 아무 곡이나 끼워넣었다. 요절한 싱어송라이터 유재하의 유일한 앨범에도 명곡 '사랑하기 때문에'의 다음 순서엔 '열리는 새 시대의 힘찬 발걸음 / 거리마다 직장마다 정화의 물결'이라는 '정화의 노래'가 들어갔다. 난감한 일이었다. 어떤 가수는 건전가요조차도 본인이 스스로 불렀다. 어차피 들어가야 한다면 자기 목소리로 넣는 게 차선이라 여긴 것이다. 조용필도 1987년 9집 앨범 끝에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이라며 군가 '진짜사나이'를 불러 수록했다. '들국화'가 1집 마지막 트랙에 건전가요로 녹음한 '우리의 소원'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정수라가 '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렀다'는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은 그녀의 다른 노래를 제치고 대히트해 대표곡이 됐다. 하지만 비상식적 제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86년 조선일보는 '사람들이 안 듣는 건전가요는 실효성 없는 끼워 팔기'라고 지적했다. 이로부터 2년 뒤인 1988년 말부터 건전가요가 가요 음반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사연 많던 '건전가요'란 단어가 최근 외신 보도에 등장했다. 지난 14일 스웨덴에서 열린 '2016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옛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소수민족의 참상을 노래한 저항가요가 우승하자 러시아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선 '건전가요의 축제가 되어야 할 유로비전이 변질됐다'고 비난했다. 어떤 집단의 정치적 입맛에 맞는 노래에 붙이는 수식어가 '건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일보
'옛것의 기록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두환 전 대통령 1주기, 유골은 아직 연희동에 (0) | 2022.12.19 |
---|---|
[모던 경성]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전차… (0) | 2022.12.18 |
[모던 경성]경성제대 축구팀, 英軍·큐슈제대를 꺾다 (0) | 2022.12.12 |
박정희와 한강 15 (0) | 2022.12.05 |
[김명환의 시간여행] [19] "反사회적 유흥" 고고춤 전면금지령… 춤추던 대학생 84명 무더기 연행도 (0) | 2022.12.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