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러 저런 아야기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할머니, 엄마, 딸, 손녀까지 4대가 모두 장녀…

by 까망잉크 2022. 12. 20.

할머니, 엄마, 딸, 손녀까지 4대가 모두 장녀…그럼 남편은?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입력 2022.12.20 06:00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는 중앙일보 독자의 사연을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리는 독자 서비스입니다.

4대가 모였습니다. 4대가 한자리에 모이는 일도 쉽지 않은데 모두 장녀입니다. 게다가 1대부터 3대까지 모두 맏이와 결혼했습니다. 기막힌 집안 내력이라며 1대 권종인 여사의 맏사위가 사연을 신청했습니다. 과연 기막힌 내력입니다.

안녕하세요?
특이하게도 형제자매 중 첫째가 딸로 태어나
계속해서 4대째 장녀로 이어지는 집안 이야기입니다.
저의 장모님이 첫째 딸이고,
제 아내가 또 첫째 딸,
그리고 또 저희가 첫째를 딸로 낳았고,
그 딸이 또 첫째로 딸을 낳았답니다
그렇게 4대가 이어지는 장녀 집안이 되었고,
장모님이 올해 말 희수(88세) 생일을 맞이하시는데
건강하실 때 멋진 사진을 남겨 희수 생신 선물로 전해 드리고 싶어 ‘인생 사진’ 신청을 드립니다.
참고로 나이는 장모님이 88세,
집사람이 66세,
딸이 40세,
외손녀가 6세입니다.

신헌식 드림

 

서울 남산 한옥마을 입구에서 4대 가족을 만났습니다. 얼굴도 모른 채였지만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먼발치에서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단란했으니까요.

장모의 미수(米壽) 생신 선물로 인생 사진을 신청한 맏사위와 사진 찍을 장소를 의논했습니다. 사위는 사진 찍을 장소로 남산 한옥마을을 제안했습니다. 4대째 맏딸로만 이루어진 집안 이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습니다.

약속한 날,
약속한 시각보다 미리 가서 사진 찍을 장소를 둘러 둘러봤습니다. 요모조모 궁리 후 내려오다 눈에 띄는 가족을 찾았습니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한눈에 알 듯했습니다. 오손도손 담소를 나누는 모습만으로도 4대의 단란함이 전해져 왔으니까요.

 

인사를 나누고 이름과 남매가 몇인지 물었습니다.
1대는 권종인 여사입니다. 4남매 중 맏이고요.
2대는 정위영 여사입니다. 5남매 중 맏이입니다.
3대는 신영미 씨이고요. 남매 중 맏이입니다.
4대는 서예린이고요. 남매 중 맏이입니다.

한 번도 딸들이 다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권영인 여사는 맏딸인 정위영 여사의 넓은 마음 씀씀이가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우애 깊은 남매들이라는 자랑도 덧붙였습니다.

1대 권종인 여사에게 장녀로 살아온 이야기를 여쭈었습니다.
권 여사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며 지난 삶을 반추했습니다.

“농번기 때는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다했죠. 소여물도 끓여보고, 집안 제사도 다 챙겨야 했고요. 동생들 업어 키우는 것도 제 몫이었고요.”
“보통 장녀는 엄마 역할도 하던데요.”
“당연히 그랬죠. 하하.”
“자녀를 모두 다섯 두셨다고요?”
“딸 넷을 먼저 낳고 마지막에 아들을 뒀습니다.”
“장녀인 큰딸은 어땠습니까?”
“5남매 맏이로서 성격이 무난하고 훌륭해요. 딸 넷이 한 번이라도 싸우는 걸 못 봤어요. 동네서 소문이 날 정도로 우애 있어요.”

1대 권종인 여사는 딸 넷을 먼저 놓고 맘이 녹록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8남매의 맏이였던 권 여사 어머니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답니다. 그 한마디는 “두고 봐라. 아들 넷보다 딸 넷이 더 났다. 그러니 아무 염려 마라” 입니다.

이때 사연을 보내 사위가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장모님도 맏이와 결혼했고요. 저도 맏이고요. 제 딸도 맏이와 결혼했어요. 하하. 다 맏딸인데 다 맏이와 결혼한 거죠. 우리 집 안에는 행사만 있으면 30여 명씩 모이는 데 그 큰일을 아내가 다 하죠. 다 장모님께 보고 배워서 그런 겁니다. 하하.”

정위영 여사에게 힘들지 않은지 물었습니다.

“힘들어도 그걸 즐거운 마음으로 하니까 힘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때 1대 권종인 여사가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원래 제 딸은 장남한테 시집 안 보내려고 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또 장남이더라고요. 그게 운명인가 보더라고요. 힘들까 싶어 염려했는데 그래도 보내고 나니 사위가 워낙 훌륭해서 더할 나위 없어요.”
 

권종인 여사는 맏사위가 인생 사진을 신청한 바람에 모두 장녀로 이어온 내력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권종인 여사 어머니 또한 8남매의 맏이였던 사실이 떠올랐으니 모두 5대째 장녀로 이어지는 내력인 겁니다.

사위는 장모 자랑, 장모는 사위 자랑입니다.
그런데 이날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권종인 여사가 4대 장녀 집안이 아니고 5대 장녀 집안이라는 사실을 밝힌 겁니다.

“사실 장녀로만 이어지는 사실을 인식 못 하고 살았는데, 이번에 이리 모여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우리 어머니도 8남매의 맏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권 여사의 어머니는 참으로 호방하셨다고 합니다. 권 여사가 딸 넷을 낳았을 때 “두고 봐라. 아들 넷보다 딸 넷이 더 났다. 그러니 아무 염려 말라”며  권 여사를 달랬다고 합니다.

딸, 손주, 증손주 모두 하나같이 사랑스럽다는 권종인 여사는 곧 미수 생일을 맞습니다. 사랑스러운 4대가 함께한 가족사진이 생일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권 여사는 실제 당신의 어머님 말씀처럼 그렇다고 합니다.
키울 때 고생해서 그렇지 지금은 하나같이 자랑스러운 자식이며 손주들이라고 합니다.
이제 곧 권 여사의 미수 생일입니다.
4대가 단란하게 모여 찍은 이 ‘인생 사진’이 더할 나위 없는 생일 선물이 되길 바랍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중앙일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