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중학교 무시험 입학 추첨 첫 실시… ‘뺑뺑이 세대’ 탄생[역사 속의 This week]
입력2023.01.30. 오전 8:58
1969년 2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중학교 입학을 위한 무시험 추첨에서 한 여학생이 추첨기를 돌리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 역사 속의 This week
중학교를 시험 쳐서 들어가던 1960년대 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생들은 ‘국6병’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고3 못지않은 입시전쟁에 시달렸다. 과외가 판을 치고 아이들이 잠을 쫓기 위해 각성제까지 먹어가며 밤을 새우는가 하면 명문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도 불사하던 시절이었다. 경기중·경복중·서울중·경기여중·이화여중 등 소위 일류 중학교 입학은 일류 고등학교와 대학교로 이어지는 첫 단추였기에 입시 경쟁이 치열했다. 자식의 성적과 진학을 위한 ‘치맛바람’도 이때부터 불기 시작했다.
과열된 입시 경쟁은 큰 파동을 일으켰다. 1964년에 치러진 서울 지역 중학교 입시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이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발표된 정답은 ‘디아스타제’. 그러자 무즙을 선택한 학생의 부모들이 교과서에 ‘침과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다’고 적혀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아무 문제가 없다던 교육 당국은 논란이 커지자 해당 문제를 무효화 한다고 했다가 또 다른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혀 원래대로 디아스타제만 답으로 인정한다고 번복해 사태를 키웠다.
한 문제로 자녀의 당락이 걸린 부모들은 무즙으로 만든 엿을 솥째 들고 서울시 교육위원회에 몰려가 “엿 먹어라!” 소리치며 시위를 벌였다.
‘무즙 파동’은 법정 공방 끝에 서울고등법원이 무즙을 정답으로 인정해 낙방한 38명을 구제하라고 판결을 내리면서 가라앉았다.
3년 뒤에는 ‘창칼 파동’이 일어났다.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쓴 그림은 무엇인가’라는 문항에 경기중학교가 복수 정답을 인정하자 낙방한 학부모들이 교장과 교감을 연금하는가 하면 소송도 제기했지만, 이번에는 패소했다.
연이은 파동에 정부는 1968년 7월 중학교 입학을 무시험제로 바꾸겠다고 발표한다. 신체 발육에 지장을 줄 정도였던 입시지옥에서 어린이들을 해방하고 학부모들의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을 덜기 위해 입학시험을 폐지하고 학군별 추첨을 통해 배정한다는 것이다.
이듬해인 1969년 2월 5일 서울에서 처음으로 중학교 무시험 진학을 위한 추첨이 실시됐다. 학생들은 가야 할 학교를 자신들의 손으로 뽑았다. ‘뺑뺑이’라 불린 물레 모양의 추첨기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한 번 돌리면 번호가 적힌 운명의 은행알 하나가 톡 떨어져나왔다. 평준화 교육 세대를 지칭하는 ‘뺑뺑이 세대’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서울을 시작으로 다음 해에는 부산, 광주, 대전, 인천 등 10대 도시, 1971년에는 전국적으로 중학교 입시가 사라졌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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