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앞 드러누운 노숙자... 사람들이 박수 친 이유
미술관 입구에 놓인 노숙자 조각
운석에 깔려 넘어진 교황像까지…
블랙 코미디로 기성 미술계 도발
냉장고 안엔 죽은 모친 모형 넣어
새로운 형태의 ‘기념비’ 창조해
논란의 출세작 ‘바나나’도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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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입구에 웬 노숙자가 누워있다. 삼성가(家) 소유의 한국에서 가장 돈 많은 사립 미술관, 그리고 남루한 점퍼에 목장갑을 낀 노숙자. 고매한 가치를 들먹이는 부귀영화의 무대에 들어서지 못하고, 문밖에서 남자는 삶의 소외와 비참을 온몸으로 피력한다. 다만 멋쩍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이 노숙자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의 국내 첫 개인전이 리움미술관에서 7월 16일까지 열린다. 특유의 블랙 코미디로 세계의 가치 체계를 도발해온 작가의 대표작 34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 관문에 노숙자, 그러니까 최신작 ‘동훈과 준호’ 조각이 놓여있다. 미술관 로비에도 놓인 노숙자 조각과 한 쌍이다. 1996년 이 연작의 최초 공개 당시 관람객이 경찰에 신고하는 해프닝이 있었고, 2년 뒤 미국 위스콘신 대학 캠퍼스 전시에서는 옆에다 누군가 등록금 인상 반대 팻말을 세워두는 통에 투쟁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 카텔란이 기획한 모든 작품은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1인극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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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벽에 붙인 식용 바나나(코미디언)를 약 1억5000만원에 판매하며 단박에 이름을 알렸다. 영구적이지 않고, 노력의 결실도 아니며, 가격까지 터무니없다는 점에서 작정한 미술사(史) 비틀기였다. 그러나 작품은 팔렸고, 개념미술의 새 장이 열렸다. 운석에 깔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실물 조각(아홉 번째 시간·1999), 실탄을 쏴 구멍 낸 검은 캔버스(밤·2021), 실제 갤러리 주인을 벽에 3시간 동안 테이프로 붙여놓은 뒤 찍은 사진 ‘완벽한 날’(1999) 등 카텔란이 제시하는 황당한 장면은 ‘이게 왜 예술인가’라는 질문 자체라 할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부관장은 “그저 ‘바나나 작가’로만 알려진 카텔란의 수많은 면모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 스스로 의도를 밝힌 바 없지만, 작품 제작의 전후 사정을 살핌으로써 추론해 볼 수는 있다. 머리를 바닥에 박은 채 거꾸로 선 두 제복 경찰(프랭크와 제이미·2002) 조각은 9·11 테러 직후 만든 것이다. 수갑과 곤봉을 허리에 차고도 멍청한 미소만 흘리고 있는 반전(反轉)의 형상에서, 무너진 쌍둥이 빌딩 혹은 무력한 공권력이 보일 것이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소년 형상의 히틀러(그·2001)처럼, 맥락의 전복으로 생성되는 새 의미는 곳곳에서 관찰된다. 전시장에 냉장고 한 대가 있다. 살짝 열린 문 안쪽에 웅크린 중년 여성이 있다. 카텔란의 어머니다. 작가는 20대 초반에 여읜 모친을 조각으로 재현해 냉장실에 넣어뒀다. 추억의 박제를 위한 기념비(碑)가 반드시 하나의 형태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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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박제 작품이 다수 출품됐다. 100여 마리의 비둘기가 대표적 예다. 작품명 ‘유령’. 의식하지 못했던 야외 풍경이 실내로 침입해 발생한 이질감이 계속해서 신경을 자극한다. 커다란 말(노베첸토·1997)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속력을 잃고 중력으로 축 처진 사체(死體)에서 작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고로 작품 속 작가 찾기는 관람의 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유년의 카텔란과 닮은 소년(찰리·2003) 조각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온종일 미술관 1층을 누빈다. 직원이 무선 조종하는 것이긴 하나, 기성의 제지나 금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카텔란은 페달을 밟는다.
이따금 굉음에 놀랄 것이다. 1층 천장 부근에서 북치는 소년(무제·2003)이 예고 없이 양철북 치는 소리다. 깽판 치듯, 일깨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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