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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의 땅의 歷史

우리는 조선을 뛰어넘은 대한민국이다

by 까망잉크 2023. 5. 10.

우리는 조선을 뛰어넘은 대한민국이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입력2023.05.10. 오전 3:04 수정2023.05.10. 오전 9:10

342. 공화국 대한민국① 봉건 조선에 없던 대한민국 풍경들

* 유튜브 https://youtu.be/4DTLuaHGWeg 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식민시대인 1926년 경복궁 앞에 세워진 조선총독부 청사는 해방 후 건국을 선포한 중앙청으로 사용됐다. 전쟁으로 파괴됐던 중앙청은 훗날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철거됐다. 그 사이 이 땅에는 봉건 왕조와 식민시대가 지나고 공화국시대가 도래했다. 경복궁에는 대한민국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시간을 즐긴다. 부국와 강병으로 부활한 근대 공화국, 대한민국시대다./박종인기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민주공화국입니다. 국민 행복을 위해 부국(富國)과 강병(强兵)을 정책적으로 실천하는 근대 공화국입니다. 백성을 통치 대상으로 삼고 부국강병을 등한시했던 봉건 조선과는 ‘전혀’ 다른 국가입니다. 조선에서 혹은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 정통성을 찾겠다는 시도는 허황됩니다. 삼일운동 때, 임시정부 때는 물론 해방 후 건국의 아버지들은 근대(近代)라는 시대정신에 따라 조선을 폐기하고 공화국 대한민국을 세웠습니다.

조선과 대한민국은 무엇이 다를까요. 왜 조선은 가난했고 약했고 백성은 주인이 되지 못했을까요. 대한민국은 그 조선과 무엇이 다르기에 21세기 지구촌 주역으로 성장했을까요. ‘근대 공화국 대한민국’이 모든 금기(禁忌)를 깨고 그 답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하멜과 흑표전차

1653년 조선에 표류했던 네덜란드 사람 하멜이 지금 있었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옆 나라 폴란드가 최신 무기를 대량으로 구입해놨는데, 그것들이 “전 세계에 나라가 12개밖에 없다”고 그에게 단언했던(헨드릭 하멜, ‘하멜 표류기’, 김태진 역, 서해문집, 2003, p133) 그 조선인 작품이 아닌가. 자기들 소총과 대포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세상에 무지했던 그 조선이. 2022년 대한민국은 폴란드에 모두 124억달러어치 무기를 판매했다. 예컨대 K2흑표전차(현대로템), K9자주포(국방과학연구소,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239천무다연장로켓포(한화디펜스) 등등. 이들을 생산하고 판매한 주체는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기업’이다. 화차(火車), 신기전(神機箭) 같은 첨단 무기를 개발해놓고도 사용법마저 망각한 조선과 달랐다. 조선에는 없던 주체들이다.

1653년 조선, 돌 줍는 하멜

2023년 대한민국, 흑표전차 수출./현대로템 제공

엔지니어와 상놈, 누리호

2022년 6월 21일 오후 4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가 발사됐다. 1조9527억원이 투입되고 300군데가 넘는 기업이 참가한 초대규모 프로젝트가 성공했다. 이 또한 주역은 정부와 항공우주연구원과 기업들이었다. 1696년 관요(官窯) 도공 39명이 굶어죽고(1697년 윤3월 6일 ‘승정원일기’) 차별 속에 천대받던 최하층, 나라가 사라질 때까지 무명(無名)으로 살았던 엔지니어들이 이제 국가와 공동체 미래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저 ‘상놈’ 취급을 받았던 상인들이 지금은 엔지니어들이 생산해낸 상품을 팔아서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오는 5월 24일 그 누리호가 또 한 번 발사될 예정이다.

2022년 대한민국, 누리호 발사./조선일보db

이루어진 박제가 꿈, 길

2021년 현재 대한민국에 있는 포장도로 총 길이는 11만3405㎞다. 이 가운데 4866㎞가 고속도로다.(국토교통 통계누리,’도로현황’) 정조시대 북학파(北學派) 박제가가 “사람과 말이 서로 부딪쳐 다닐 수가 없다”고 한탄했던 18세기 좁은 흙길이 아니다.(박제가, ‘북학의’, 안대회 역, 내편 ‘도로’, 돌베개, 2013, p111) 김옥균은 “부강하려면 도로 건설이 우선”이라고 했다.(김옥균, ‘치도약론’, 1884년 7월 3일 ‘한성순보’) 하지만 구한말 조선을 찾은 외국인 가운데 길을 비판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1968년 1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가 기자회견에서 선언했다.

“경부 간 고속도 도로 계획 같은 이런 것은 과거 우리 민족의 하나의 꿈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꿈을 우리들의 기술과 우리들의 자본과 우리들의 노력으로써 한번 이뤄보자.”(박정희, 1968년 1월 15일 연두기자회견) 엔지니어들이 만든 상품을 상인들이 그 길 위로 실어 나른다. 박제가와 김옥균의 꿈은 대한민국이 이뤘다.

동력, 노비에서 원자력으로

1956년 3월 문교부에 원자력과라는 부서가 대통령령으로 신설됐다. 1958년 대통령 직속으로 ‘원자력원(原子力院)’이 설립됐다. 1959년 7월 14일 당시 경기도 양주 불암산 아래 당시 서울공대 캠퍼스에서 연구용 원자로1호 기공식이 열렸다. 당시 대통령 이승만을 포함해 3부 요인과 외교 사절이 모두 기공식에 참석했다.(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60년사’, 2019, p16, 17) 전쟁이 끝나고 6년밖에 안 됐지만 대한민국은 미래의 에너지원과 과학기술의 원천에 돈을 쏟아부었다. 원자력원은 지금 한국원자력연구원으로 개편돼 대전 대덕단지에 있다.

근대를 만든 동력원은 석탄(石炭)이었다. 그런데 500년 조선왕조실록에는 ‘석탄’에 대한 언급이 단 네 번 나온다. ‘노비(奴婢)’라는 단어는 4467번 나온다. 조선의 동력원은 노비(奴婢)였다. 많게는 40%에 이르는 노비가 제조와 용역을 맡았다. 에너지원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굳이 필요없었다. 화력이 필요하면 노비가 산에서 땔감을 구해왔다. 산은 민둥산이었다. 대한민국에 노비는 없다. 민둥산도 없다. 미래 동력을 연구하는 인재가 있다.

1953년 대한민국은 ‘문맹국민 완전퇴치 계획’을 선언했다. 해방 직후 78%였던 문맹률은 1958년 4%로 떨어졌다. 사진은 1953년 1월 1일 국무회의 회의자료./국가기록원

문맹에서 각성으로, 한글

현대 한글 체계를 완성시킨 구한말 선교사 호머 헐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반상 제도를 고착시키는 한문을 버리고 한글 창제 직후부터 한글을 받아들였다면 한민족에게 무한한 축복이 있었으리라.”(H. 헐버트, ‘The Korean Alphabet’, Korean Repository 1896년 6월호)

성리학적 모순을 타파하고 근대화를 당길 가장 강력한 백신이 한글이었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500년 동안 한글을 외면했다.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은 이후 세상을 변혁시킬 그 어떤 고급 정보도 백성에게 유통하지 못했다. 구한말 조선 문맹률은 90%에 달했다.

전쟁 와중인 1953년 1월 1일 대한민국 국무회의 안건은 ‘문맹 국민 완전 퇴치 계획’이었다. 문교부가 국무회의에 제출한 계획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민주 국가의 건전한 진전을 기함에는 그나라 국민 전체의 지적 수준 여하가 절대적인 근본 요소임은 재론을 불요한다.’(문교부, 1953년 1월 1일 국무회의부의사항 ‘문맹국민완전퇴치계획’, 국가기록원)

해방 직후 78%였던 대한민국 문맹률은 미군정에 의해 1948년까지 41.3%로 낮아졌다. 그 문맹률이, 전쟁이 끝나던 1953년 11월 이후 5차례 실시된 문맹 완전 퇴치 계획 결과 4.1%로 급감했다.(한국교육개발원, ‘한국 성인 문해 교육의 발전과정과 성과’, 2011, p36) 2023년 현재 문맹률 개념은 무의미하다. 대한민국은 문맹률 조사를 하지 않는다. 조선 왕조가 거부했던 공동체의 각성은 대한민국이 완성했다. 조선과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다.

새로운 시대 정신, 근대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지금 역사를 쓰는 중이다. 공동체가 신분제에 갇혔을 때는 존재할 수 없었던 고급 인력이 나라를 설계하고 국가를 운영한다. 천대받던 장인(匠人)과 상놈들이 국부(國富)와 강병(强兵)을 창조한다. 좋든 싫든 식민 시대 35년이 남긴 자산을 활용한 실용주의와 조선스러운 폐쇄주의를 누르고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손을 잡은 개방주의 리더십, 그리고 각성한 대중이 대한민국을 건설했다. 그 근대를 이야기해보자.

박종인 선임기자 sen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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