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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누가 세어 봤느냐 ??

by 까망잉크 2008. 5. 19.

 

누가 세어 봤느냐(誰數之也)

나는 김부식(金富軾)의 시(詩)를 보면 정지상(鄭知常)이 떠오르고 鄭知常의 詩를 읽으면 金富軾이 떠오른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이규보(李奎報)의 다음 글을 읽고부터가 아닌가 한다. 별로 좋지도 않은 인연(因緣)인데.

 

시중 김부식(侍中 金富軾)과 학사 정지상(學士 鄭知常)은 문장으로 이름이 일세에 나란했는데, 서로 能하지 못할까(뒤질까) 늘 다투고 반목했다. 일찍이 知常이

 

琳宮(임궁,=절)에 스님 말씀 끝나니

하늘빛이 유리처럼 맑구나.

琳宮梵語罷, 天色淨琉璃.

 

하는 詩句를 지었던바, 富軾이 이를 좋아하여 자기의 詩를 삼고자 하였으나 허락지 않았다. 후에 知常이 富軾에게 죽임을 당하고 음귀(陰鬼)가 되었는데, 하루는 富軾이 봄을 읊어 가로되

 

버들 빛은 千絲(천 가닥)가 푸르고

복사꽃은 萬點(만 송이)이 붉다.

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하니, 홀연히 공중에서 知常의 귀신(鬼神)이 富軾의 뺨을 때리며

“千絲 萬點을 누가 세어 봤느냐(誰數之也)? 왜

버들 빛은 실실(絲絲)이 푸르고/복사꽃은 점점(點點)이 붉다.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

라 하지 않느냐?”

했다.

 

富軾이 마음이 상하여 정귀(鄭鬼)를 몹시 미워했다.

후에 富軾이 어느 절의 厠間(측간)에 앉아 있는데, 鄭鬼가 뒤에서 富軾의 불알을 움켜잡고

“술도 안 먹었는데 왜 얼굴이 붉으냐?”

하니, 富軾이

“저 언덕 단풍(丹楓)이 얼굴을 비추어서 붉다.”

하고, 鄭鬼가 더 힘껏 움켜잡으며

“무엇으로 불알 껍질을 하였느냐?”

하니,

“네 애비 불알은 쇠로 껍질을 하였느냐?”

하고 낯빛을 변치 않았다. 이에 鄭鬼가 더 힘을 써 움켜잡으니 富軾은 마침내 厠間에서 죽고 말았다.

『白雲小說』

 

남의 詩句를 자기 것으로 하자 한 金富軾은 떳떳한 사람이 못 된다. 厠間에 앉아 있는 사람의 불알을 뒤에서 움켜잡아 죽인 鄭鬼도 그리 떳떳한 鬼神은 못 된다. 이야기 자체가 별로 산뜻하지가 않다. 이것은 아마 다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文章(또는 詩句)을 가지고 다투는 그 熾烈(치열)함은 자못 首肯되는 바가 없지 않다. 얼마나 熾烈했으면 죽어서까지 그랬을까? 이것을 한낱 鄭知常의 復讐쯤으로 생각하고 그 熾烈함을 놓친다면 그것은 안 될 일이다.

 

金富軾(1075~1151) ; 高麗 仁宗 때의 學者, 文臣. 號는 雷川. 侍中은 官職. 文集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詩文이 뛰어났다. 『東文選』에 그의 詩文이 상당량 전한다. 저서로 『三國史記』.

 

鄭知常(?~1135) ; 高麗 仁宗 때의 文臣, 詩人. 號는 南湖. 詩에 뛰어나고 그림과 글씨에도 능했다. 妙淸의 亂이 일어나자 이에 관련된 혐의로 金富軾에게 죽임을 당했다. 저서로 『鄭司諫集』.

 

李奎報(1168~1241) ; 高麗 高宗 때의 文人, 門神. 號는 白雲居士. 古典에 밝고 詩文이 뛰어났다. 詩와 술과 거문고를 너무 좋아하여 三酷好(삼혹호) 선생이라 자칭했다. 저서로 『東國李相國集』.

 

鄭震權(정진권)韓國體育大學校 敎授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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