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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이야기

까마귀

by 까망잉크 2008. 6. 24.

 

까마귀 

 

그림:Corvus corax (Pcb21).jpg 
 
 

 

 
참새목 까마귀과의 새. 날개길이 약 33㎝ 정도. 평지에서 깊은 산 속에 이르는 침엽수에서 번식한다. 수컷의 겨울깃은 온몸이 자색의 광택이 있는 검은색이다. 이마의 깃털은 비늘 모양이고, 목의 앞쪽과 가슴의 깃털은 버드나무잎 모양이다. 가장 바깥쪽 꼬리깃은 중앙의 꼬리깃보다 약 2㎝ 짧기 때문에 둥근 꼬리를 이룬다. 여름깃은 봄철에 털갈이를 하지 않기 때문에 광택을 잃고 갈색을 띤다. 암컷은 수컷과 같으나 다소 작다. 부리는 강대하나 큰부리까마귀보다 가늘다. 부리 색은 검은색이며 부리털은 부리 중앙에 이른다. 홍채는 검은 갈색이고, 다리는 검은색이다. 번식기에는 1∼2쌍의 작은 무리를 볼 수 있으나 번식 후 월동기에는 무리를 짓기 시작하여 북부의 번식 집단이 남하 해오는 10월 이후에는 특히 큰 무리를 볼 수 있으며 월동지인 한반도의 남단 지역에서는 수십 마리에서 수백 마리의 떼를 볼 수 있다. 산란기는 3월 하순에서 6월 하순이고 연 1회 번식하며, 한배의 산란수는 3∼5개이다. 알은 푸른 녹색 바탕에 잿빛·녹갈색·짙은 갈색 등의 얼룩점과 얼룩무늬가 넓게 산재한다. 암컷이 포란하고 수컷은 포란 중의 암컷에게 먹이를 운반한다. 새끼는 포란 후 14∼15일이면 부화되고, 부화 후 30∼35일이면 둥우리를 떠나며, 둥우리를 떠난 어린새는 그후에도 제법 오랫동안 어미새와 함께 지낸다. 식성은 잡식성으로 조류의 알과 들쥐 등을 먹으며, 그밖의 갑각류·곤충류의 벌목·파리목·딱정벌레목 등도 먹는다. 남아프리카·뉴질랜드를 제외한 전세계에 분포한다.
                                     

 


 

까마귀의 상징

1. 신화

[해와 달]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름에 들어 있는 오(烏)는 까마귀를 뜻한다. 이들은 해와 달의 정기를 지닌 인물로 여겨졌다.

[신의 사자]
신라 제 21대 소지왕 10년에 왕이 천천정에 나갔을 때, 까마귀와 쥐가 나타났다. 쥐가 말하기를, 이 까마귀를 따라가라고 했다. 왕은 말을 탄 군사로 하여금 뒤쫓게 했다. 군사는 남쪽으로 피촌에 다다라 돼지 2마리가 싸우는 것을 구경하다가 까마귀를 놓치고 길에서 헤매게 되었다. 이 때, 한 노인이 못에서 나와 글을 올렸는데, 겉봉에 "이를 떼어 보면 둘이 죽을 것이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편지를 전해 받은 왕은 "떼어 보지 않고 한 사람만 죽는 게 낫겠다."고 했다. 이에, 일관이 "둘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킵니다."고 하자, 왕은 그것을 떼어보았다. 글에는 "금갑을 쏘라."고 하였다. 왕이 궁으로 돌아가 금갑을 쏘니, 내전에서 향을 사르는 중과 궁주가 간통하고 있었다. 둘은 죽음을 당했다. 이후부터 정월의 첫번째 돼지날, 쥐날, 말날에는 모든 일을 삼가고, 정월 보름을 오기일이라 하여 약밥으로 제사 지냈다. 여기서 까마귀는 나쁜 일을 알려주는 신의 사자를 상징한다.

[국가]
삼국사기에는 까마귀가 국가를 상징하는 대목이 있다. 고구려의 대무신왕은 북부여와 한창 전쟁 중이었다. 어느 날 북부여의 대소왕이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인 붉은 까마귀를 얻었다. 이것을 본 신하가 "까마귀는 검은색인데 붉은 색으로 변하였고,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이니, 이것은 두 나라가 합병될 징조이므로 왕께서 고구려를 정복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이에 왕이 기뻐하여 까마귀를 고구려로 보냈다. 이를 받아 본 고구려 왕은 오히려 기뻐했다. "검정은 북방의 빛인데, 남방의 빛인 붉은색으로 되었다. 붉은 까마귀는 상서로운 것이다." 여기서의 붉은 까마귀는 곧 고구려를 상징한다.


2. 무속·민속

[사자]
제사를 지내고 난 후 젯밥과 나물 등을 대문 앞이나 울타리 곁에 놓아두는 관습이 있다. 그 젯밥과 나물 등을 까마귀밥이라 한다. 까마귀가 저승에 있는 조상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관습이 이어져 온 듯하다. 여기서의 까마귀는 저승을 오가는 사자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제주도 무속에 '까마귀 모른 식개'라는 것이 있다. 정식으로 모셔야 할 사람이 모시지 못하는 제사를 일컫는 것으로,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출가한 딸이 시집에서 친정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경우이다. 친정 부모의 제사를 시집에서 치르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이 모르게 제사 지낸다는 뜻에서 '까마귀 모른 식개'라고 한다.

[일신(日神)]
우리 민족의 경우, 솟대상의 새로 까마귀가 일반적인데, 일신(日神)의 상징으로서 까마귀가 숭배되었으니, 이러한 사상은 북방 시베리아 민족의 신앙에 잘 나타나 있다.

[불교: 사자]
삼국유사에 의하면, 까마귀는 신령한 새로서 부처의 사자 역할을 한다. 신라 문무왕 원년, 사미 지통에게 까마귀가 날아와 말하기를 "영취산에 가서 낭지의 제자가 되라."고 하였다. 지통은 금라에 따라 산을 찾아들어 나무아래에서 쉴 때, 보현보살이 나타나 지통에게 계품을 주었다. 계품을 받은 지통이 다시 길을 가다 한 스님을 만나 낭지 스님의 거처를 물었다. 그러자 그 스님은 자신이 낭지이며, 까마귀가 날아와 알리기를, 거룩한 아이가 찾아올 것이니 맞이하라고 해서 마중 나왔다고 하였다.

3. 동양문화

[중국: 태양의 화신]
중국 고대 신화에 의하면, 까마귀는 태양의 화신이다. 하늘에 태양이 10개나 떠있어서, 작열하는 태양에 많은 사람이 타 죽고 산천초목이 타 들어갔다. 요임금이 예로 하여금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게 하였다. 예가 태양을 소자, 불덩이가 폭발하며 떨어졌다. 떨어진 자리에는 거대한 황금색 삼족 까마귀가 화살에 꽂혀 죽어 있었다.
전한의 회남왕 유안이 저술한 '회남자'에도 까마귀는 태양의 본질을 이루는 남성적 원리의 상징으로 나온다. 이새는 태양 속에 살며, 이따금씩 땅에 내려와 불로초를 뜯어먹는다고 했다.

[일본: 신조]
일본서기에는 까마귀가 진무천황의 동방 정벌 때에 구마노에서 야마도에 이르는 험로를 안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에서는 예부터 까마귀를 신령스런 새로 보았다. 오늘날에도 까마귀를 산신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일본 각지에 까마귀를 신의 사자로 모시는 사당이 있다. 그리고 농가에서는 한 해의 농사를 점치는 데 있어, 까마귀가 새해 첫날 첫째 번으로 먹은 음식에 따라 그 해의 농작물로 정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까마귀를 주제로 한 동요가 많이 불려지고 있는데, 그 가사는 까마귀와 친근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한편, 상서롭지 못한 새로 인식되는 수도 많다.


4. 역사·문학

[창조자]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켈트족과 게르만족 사이에서는 까마귀가 세상의 창조자로 숭앙되었다. 이러한 면은 시베리아를 비롯해 북태평양 전역에 걸쳐서 발견된다. 까마귀는 그 지역 창세 신화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이것은 중세 유럽사회에서 까마귀가 태초의 어둠이나 연금술사를 상징했던 것과도 의미가 통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까마귀가 태양의 신인 아폴로의 전신이라는 설도 있다.

5. 그림(圖)

[태양, 남성]
고구려 고분 벽화를 비롯하여 관식금구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원 안에 다리가 3개인 까마귀가 있는 도상이 있다. 일반 안에 든 다리 3개인 붉은 까마귀는 중국 한대의 '회남자'에는 적오 또는 삼족오라 하였고, 한대 와당 등에는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섬여,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약을 찧는 옥토끼와 같이 들어 있음]과 더불어 일월을 상징하고 있다. 다리가 셋인 까닭은 태양의 본질을 이루는 남성적 상징이 3이기 때문이다. 고구려 고분인 쌍영총, 무용총, 천왕 지신총, 각저총, 내리 1호분 등의 일상에 삼족오가 보인다. 고려 시대의 유물인 상감 청자 중에서 표형주자의 일상문에도 까마귀가 보이며, 조선 시대 불화에도 나타난다.

 

참고:야후,다움문화원형,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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