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릉그리고 건릉
(무성한 크로바...행운의 네잎은 어디에???)
융릉은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무덤이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장헌세자라 하였고, 1899년에 의황제로 봉해졌다.
이때 혜경궁 홍씨도 의황후로 봉해졌다.
융릉은 원래 양주의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수원의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였다
합장릉인 융릉은 병풍석을 세우고 모란과 연꽃무늬를 새겼다. 석등은 전기의 8각형과 숙종, 영조대에 등장한 4각형 석등의 양식을 합한
새로운 양식으로 건릉과 예릉의 기준이 되고있다. 무덤의 석인도 사실적이고 예전에 가슴까지 숙여진 머리가 들려 있어 시원한 분위기를
내며, 문인석에서는 머리에 금관을 쓴 예가 나타나고 있어 19세기 이후의 무덤 양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정조는 현륭원을 마련할 때 온갖 정성을 기울여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와 그의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정조는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많은 인재를 등용하고, 조선 후기의 황금문화를 이룩하였다.
건릉은 현융원의 동쪽 언덕에 있었으나 효의왕후가 죽자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쪽으로 옮기기로 하고 효의왕후와 합장하였다.
무덤은 한 언덕에 2개의 방을 갖추었으며 난간만 두르고 있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융릉의 예를 따랐다.
혼이 앉는 자리인 혼유석이 하나만 있으며, 융릉과 같이 8각형과 4각형을 조화시켜 석등을 세웠다.
문무석은 사실적이며 안정감이 있는 빼어난 조각으로 19세기 무덤의 석물제도의 새로운 표본을 제시하였다.(문화유산 정보 참조)
(어느 담장이 눈길을...)
용주사(龍珠寺)
경기도 화성 용주사(龍珠寺)
융,건릉을 빠져 나오면 1.7km지점에 숲으로 둘러싸인 용주사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론 태안읍 송산리지만 융,건릉을 모신 화산 뒤쪽인 동쪽기슭이다. 이곳엔 본래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염거화상이 창건한 갈양사가 있었다. 고려 광종21년(970)에는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수륙재를 개설하는 등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때 소실된 후
폐사가 되었으나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고 낙성식날 밤 정조가 꿈을 꾸니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龍珠
寺)라 했다고 전한다.
정조는 용주사를 중창할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리고
당대 제일의 화가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게 꾸미도록 했다. 50여 목판과 함께 대웅전 옆 잔디
밭에는 10개항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비가 우뚝 서 있다.
가을 정취를 담뿍 느껴본
용주사의 한곳,한곳,
낙엽이 수북한 여기에...
찾아간 길은 융릉,건릉으로
짙은 가을 냄새...그리고
느낌이 좋은 바람결은
쌓여진 낙엽을 흔들어 놓고 또 부르며
귓전에 속삭인다.
잘 다듬어진 잔듸를 사뿐사뿐 밞으며
그 시절 그 때를 상상해보는?????
지금을...찰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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