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보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에 나오는 인관(印觀)과 서조(署調)의 이야기가 오래 두고 생각난다. 기록은 이렇다.
신라 때 일이다. 인관은 시장에서 솜을 팔고 있었다. 서조가 곡식으로 솜을 사서 돌아오는데, 솔개가 느닷없이 솜을 채가서는 인관의 집에 떨구었다. 인관은 솜을 가지고 시장으로 와서 서조에게 말했다.
“솔개가 네 솜을 우리 집에 떨구었으니 네게 돌려준다.”
서조가 대답했다.
“아니다. 솔개가 솜을 채가서 네게 주었으니, 내가 어찌 받겠는가?”
“그렇다면 나도 네 곡식을 받을 수 없다. 도로 가져가라.”
“내가 네게 주고 산지가 이틀이나 되었다. 곡식은 이미 네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절대로 받을 수 없다.”
옥신각신 하던 두 사람은 솜과 곡식을 시장에 버려두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시장을 맡은 관리가 임금에게 이 일을 아뢰었다. 임금은 두 사람에게 벼슬을 내렸다.
고려 말에나 들어왔다는 솜을 신라 때 시장에서 팔았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솔개가 솜을 채가서 다른 곳도 아닌 인관의 집에 떨구었다는 것도 우습다. 또 그랬으면 그랬지, 인관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허둥지둥 달려가 서조에게 돌려주려 했고, 서조는 솔개가 솜을 채가서 네 집에 떨군 것은 이미 하늘의 뜻인데 어찌 돌려받겠느냐고 펄쩍 뛰었다. 이틀이나 지났는데 그를 찾은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은 전부터 한 동네서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가 분명하다.
솜이 아깝고, 곡식이 귀한 줄이야 왜 몰랐겠는가? 인관은 곡식 받고 판 솜이 되돌아왔으니 횡재한 것이고, 서조는 곡식 주고 산 솜을 잃었으니 손해를 본 셈이다. 하지만 인관은 생각지 않은 재물이 난감했고, 서조는 뜻하지 않게 되돌아온 재물이 불편했다. 그래서 두 바보는 결국 솜과 곡식을 다 내버리고, 서로 마음이 편해지는 길을 택했다.
사관(史官)은 기록 끝에 이런 해피엔딩을 덧붙였다. 이들의 멍청한 이야기는 시장 사람들에게 금세 퍼졌다. 관리는 이 일을 위에 보고했고, 임금은 아름답게 여겨 두 사람을 불러 벼슬을 주었다.
두 바보의 어처구니없는 고집에다 임금의 호들갑까지 보태지고서야 이 소동은 마무리되었다. 그때는 임금도 참 심심했던 모양이구나 싶기도 하고, 사관도 신문 사회면 가십 기사에나 나올 법한 시시한 이야기를 무슨 생각으로 역사책에 버젓이 실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 앞뒤도 잘 맞지 않는 이야기가, 자꾸 내 마음에 남아 떠나지 않으니 나도 그 까닭을 잘 모르겠다. 솔개가 솜을 물어왔는데, 누가 알 것인가? 다음번에 다시 시장에 내다팔면 돈이 생기고 양식이 생긴다. 또 솜을 되돌려주겠다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두말없이 받았어야 옳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별 게 없다.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이었다. 솔개가 낚아채갔으니 하늘의 뜻이려니 했고, 곡식 받고 판 것이 되돌아왔으니 훔치기라도 한 것처럼 꺼림칙했다. 그래서 둘 다 갖지 않고 내다 버림으로써 가슴에 얹힌 돌덩이를 시원스레 내려놓았다.
사람들은 이익이 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혹시 내 것을 누가 가져갈까봐 밤에 잠도 못 잔다. 재물을 쌓아두고도 더 갖지 못해 불안하고, 다 갖지 못해 안달을 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것으로 만들고는, 또 그것 때문에 전전긍긍 노심초사한다. 그들은 물질을 손에 넣는 대신 지옥을 마음에 담는다. 나눌 줄 모르는 풍요는 탐욕이다. 탐욕은 늘 재앙을 부른다. 솜과 곡식을 시장에 툭 던져 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위허위 돌아가던 두 사람의 뒷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출처: http://jungmin.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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