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옛이야기] [10] 일제때 유명한 우물 '옥정수(玉井水)' 있던 곳
성동구 옥수동(玉水洞)
'왕이 금표 안길을 따라 두모포(豆毛浦)에 놀이 가는데 이때 1000명의 궁녀가 뒤따랐다.'
조선 시대 '연산군일기'의 한 대목으로, 여기 나오는 '두모포'가 바로 현재의 성동구 옥수동(玉水洞)이다.
조선 시대 '연산군일기'의 한 대목으로, 여기 나오는 '두모포'가 바로 현재의 성동구 옥수동(玉水洞)이다.
옥수동은 한강과 중랑천 합류부에 있어 오랫동안 '두 물이 합쳐진다'는 뜻의 '두물개' '두뭇개'로 불렸다.
그걸 한자로 '두모포'라 적은 것이다.
- ▲ 일러스트=유재일 기자 jae0903@chosun.com
옥수동이란 지명은 한참 뒤인 일제시대에 생겼다.
지금의 옥수사거리 부근에 '옥정수(玉井水)'란 유명한 우물이 있어 일대를 '옥정숫골'이라 했던 게 이후 지명으로 굳어졌다. 옥정수은 1960년대 도로 공사로 매몰됐다.
임진왜란 전 옥수동은 한성에서 일본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세종대왕이 1419년 대마도를 정벌할 때 두모포 백사장에
상왕(태종)을 모시고 나와, 이종무 장군과 여덟 장수를 전송하며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승전하고 돌아온 이 장군을 맞아 잔치를 베푼 곳도 이곳이었다. 옥수동 앞 한강은 호수처럼 잔잔하고 풍광이 아름다워 마포 앞 서호(西湖)와 대비해 동호(東湖)라고 불렸다. 1517년 중종 임금이 한강변에 건물을 지은 후 젊은 학자들에게
휴가를 주고 이곳에서 공부에 전념하게 했는데, 그 이름이 동호독서당(讀書堂)이었다.
독서당은 왜란 중 소실됐지만, 성동구가 최근 독서당터 일대 '독서당길'을 역사·문화거리로 단장하겠다고 나섰으니
참 반가운 일이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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