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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지 우산[紙雨傘]

by 까망잉크 2009. 12. 21.

 

지우산[紙雨傘]

      대오리로 만든 살에 기름 먹인 종이를 발라 만든 우산.

 

50년대 지우산(紙雨傘)추억 

1950-60년대에는 ‘지우산(紙雨傘)’이라는 종이우산이 있었다. 여기에서의 ‘지우산’이란 ‘대오리’로 만든 ‘살’에 기름먹인 종이를 발라 만든 우산을 말한다. 필자들이 어릴 때는 비가 오면 ‘지우산’을 받고 다니기도 했다. 그렇다고 비가 올 때마다 썼던 것은 아니고, 어쩌다 운이 좋으면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외출용(外出用) ‘지우산’을 얻어 쓰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의 시골에는 ‘비닐우산’이나 ‘천’으로 만든 우산은 아예 없었고, 있다손 치더라도 몇몇 부잣집이 아니면 거의 다 ‘삿갓’을 쓰거나 ‘마다리’를 뒤집어쓰고 다녔다. 아니면 ‘보릿짚 모자’에 ‘우장’을 받쳐 입고 다녔고, 어린이들은 거의 그냥 비를 맞고 다녔다. 당시의 ‘지우산(紙雨傘)’은 공장(가내수공업)에서 만들기도 했지만, 시골에서는 거의 모든 가정집에서 만들어 사용했다. ‘지우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간 일손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40-50년대 유행하던 지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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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산(紙雨傘)’을 만들려면 우선 질 좋은 ‘닥종이’를 구하고, ‘우산꼭지’를 만들 ‘때죽나무’를 잘 말려서 댓살이 들어갈 수 있는 ‘홈’을 파야 된다. 우산의 ‘댓살’은 오래되고 단단한 대나무를 골라서 잘 다듬어 마흔다섯 개로 쪼개어 ‘실’을 꿰맬 수 있는

구멍을 뚫고, ‘우산꼭지’ ‘홈’ 파인 곳에 하나하나 집어넣어 빠지지 않도록 ‘실’로 단단히 매어야 한다.                        

‘우산살’은 간격이 일정하게 살 끝에다 튼튼한 ‘실’로 고정(固定)하여 엮고, ‘우산대’는 직경(直徑)이 2cm정도 되는 곧은 대나무를 골라 우산을 폈을 때 고정시키는 ‘고정대(固定臺)’를 설치하면 어느 정도 재료(材料)준비가 된다.

준비된 ‘한지(韓紙)’를 원형(圓形)이 되도록 재단하여 ‘한지’가 이어지는 부분이 ‘우산살’에 가도록 하여 ‘풀’로 잘 붙인 후 ‘우산꼭지’와 ‘우산대’가 끼워진 곳에 물이 새지 않도록 ‘한지’로 감싸서 실로 잘 묶어야한다.

‘한지(韓紙)’가 물에 젖으면 찢어지지 않도록 ‘들기름’을 끓여서 우산에 붙인 ‘한지’ 위에 골고루 발라 온돌방에 세워서 불을 지펴 열을 가해주면 기름의 끈적끈적한 것이 걷히면서 보송보송하게 건조(乾燥)된다. 대충 이런 식으로 ‘지우산’을 만드는데, 실제(實際)의 정성과 손질은 여간 어렵고 힘 드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힘들게 만들다보니 주의력(注意力)이 부족하고 힘이 약한 아이들에게는 여간해서 ‘지우산(紙雨傘)’을 쓰게 하지 않았다. 부주의(不注意)하거나 힘에 부쳐 바람에 넘기기라도 하면 그 엄청난 공력(功力)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토록 힘들게 만들고, 인기가 있었던 ‘지우산’의 전성기(全盛期)도 잠깐 왔다가 1960년대 중반기(中半期)에 등장한

 ‘비닐우산’에 밀려 쇠퇴하다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골동품(骨董品)이 되고 말았다.

접어 놓은 지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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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특권층이 볕을 가리기 위해 사용한 일산(日傘)은 고대부터 있어왔으나 우산의 필요성이 널리 인식된 것은 야외생활을 즐기고 스포츠가 성행하던 19세기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반원형이나 4각형의 직물로 비를 가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박쥐 형태의 우산은 18세기 중반 영국의 J. 한웨이에 의해 발명되었는데 당시에는 상류층의 양산으로 주로 사용되었고 19세기초에 와서 일반화되었다. 금속제의 우산은 1847년 발명되었다.
한국에서는 대오리로 만든 살에 기름종이를 바른 종이우산이 쓰였으며, 농촌에서는 대오리나 갈대로 엮은 삿갓이나 풀로 엮어 서양 망토처럼 생긴 도롱이를 사용했다. 박쥐 형태의 우산은 조선말 개항 이후에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우산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서 우산의 시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현대적인 개념의 우산(천과 살로 이루어져 있는 박쥐형태)은 영국의 무역업자 '조나스 한웨이'가 발명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우산의 영어 표기인 'Umbrella'는 '그늘'을 뜻하는 라틴어 'Umbra'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기원전 1200년 이집트에서는 우산이 천상의 여신 누트를 상징하여 귀족들만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우산을 나약한 물건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남성들은 비 오는 날이면 우산대신 모자를 쓰거나 마차를 탔으며 심지어 그대로 비를 맞기도 했습니다.

반면 여성들에게 우산은 지위와 부를 상징하는 전유물로서 그리스 여성들은 일년에 한 번씩 아크로폴리스에서 열리는 풍요 의식 피라미드인 파라솔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이렇듯 18세기까지 우산은 주로 여성들의 액세서리로만 사용되었으며, 남성들은 비를 피하려는 행동이 남자답지 못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여성동반자를 보호해야하는 공적인 장소에서만 우산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우산의 필요성을 널리 인식시킨 사람은 러시아와 극동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던 영국 신사 '조나스 한웨이'라는 사람입니. 그는 그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1750년부터 무려 30년 동안 비가 오지 않더라도 외출할 때면 항상 우산을 갖고 다녀 사람들에게서 호모라는 놀림과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우산의 대중화가 이루어질 경우 자신들의 생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두려워한 마부들은 구정물 세례를 퍼부었지만 한웨이는 이에 굽히지 않고 우직하게 그 굴욕감을 잘 참았습니다. 차츰 사람들은 우산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 결과 '나약함'의 상징이었던 우산은 영국 신사들의 사랑 받는 물건이 되어'한웨이즈'로 불렸고, 19세기부터는 일반화가 되었습니다. 현대식의 박쥐 형태의 우산은 바로 한웨이에 의해 발명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출처:다음백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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