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사립학교
주민들이 돈 모아 세운 원산학사
근대적 교육기관으로서의 사립학교가 처음으로 세워진 것은 1883년(고종 20) 함경도 원산에서였다. 당시 개항과 함께 외세의 침투를 걱정하던 원산상회소(元山商會所)를 중심으로 신지식을 가르칠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줄 것을 원산 감리(개항장의 최고 책임자) 정현석(鄭顯奭)에게 요청했다. 그해 8월 정식으로 정부에서 원산학사(元山學舍)<사진>(원산학사를 계승한 일제 때 원산소학교 모습)를 승인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학교를 세웠고 지방의 개항장 업무에 대처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교과목은 산수·물리·기기(機器)·농업·양잠·만국공법·지리 등 광범위한 근대 학문과 일본어 등 외국어를 포괄하고 있었다. 교재는 ‘영지(瀛志)’ ‘연방지(聯邦志)’ ‘기기도설(奇器圖說)’ 등 실학적인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설립기금을 내지 못한 원산 지역민의 자제들만 아니라, 다른 지방 사람이라도 입학금을 내면 뽑았고, 무예반에 가려는 사람은 입학금이 없어도 입학할 수 있었다.
이후 선교사들에 의한 기독교계 사립학교들이 많이 세워졌다. 장로파 선교회의 광혜원(1885), 미국 북감리교 선교부의 배재학당(1885)과 이화학당(1886) 등이었다.
민족자본 계열의 학교들도 이에 못지않았다. 특히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전국 도처에서 숱한 사람들이 사재를 털어 사립학교를 설립했다. 광성의숙·양정의숙·보성전문학교·진명여학교·명신여학교 등이었다. ‘언젠가는 우리 민족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인재를 키우자’는 뜻이었다.
일제는 1911년의 제1차 조선교육령 등을 통해 사립학교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대한제국기 5000여곳에 이르던 사립학교는 1912년 1347곳, 1943년 387곳으로 급감했다. 광복 이후에는 초등교육의 의무화와 문해교육에 교육정책의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설립규정을 완화해 사립학교의 설립을 유도했다. 2009년 현재 국내 사립학교 수는 모두 1534개교(초 75, 중 650, 고 658, 대 151)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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