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조각가
- ▲ 김복진
법주사 미륵대불 제작하다 요절한 김복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조각가(조소작가)는 정관(井觀) 김복진(金復鎭·1901~1940)이다.충북 청원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김복진은 조각뿐 아니라 미술평론·문예운동·사회주의운동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소설가 팔봉(八峰) 김기진(金基鎭)이 친동생이기도 하다.
배재고등보통학교 시절 미술에 관심이 있었던 김복진은 학교를 졸업하고 도일(渡日), 우연히 일본 우에노 공원에서 조각 '노자(老子)'를 보고 조각가의 길을 택했다. 김복진이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한 것은 1920년이다. 도쿄미술학교 조각과에는 이미 다른 한국인도 거쳐 갔지만 요절했다. 서양 조각과를 처음으로 입학, 졸업하면서 국내 최초의 조각가로 기록됐다. 김기진·박승희 등과 함께 토월회를 창립해 방학을 이용해 귀국해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1924년 일본제국미술원전람회에서 '여인입상'으로 입선한 그는 1925년 귀국해 조선미술전람회에 '나체 습작'을 출품해 입선했다.
그는 미술비평가로도 활약해 도쿄미술학교 선배이자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에 대해 "화가로서 장래가 대단히 위험한 분"이라는 비판을 날리기도 했다. 김복진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등에 가담한 죄로 일본 경찰에 검거됐고, 옥에서 눈뜬 것은 불상 제작이었다. 윤범모 경원대 교수는 "김복진은 구원의 세계로 미륵세계를 희구하는 한편 현실세계에서는 민중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 ▲ 타계 직전에 완성한 작품 '소년'.
김복진은 여성 교육자 '최송설당 동상' 같은 인물 동상을 다수 제작했으며 법주사의 미륵대불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요절했다.
김복진의 작품은 일제 때 전시체제로 넘어가면서 총알로 녹여지고, 6·25전쟁 때 대부분 사라져 현재 남은 작품은 거의 없다. 제자로는 그가 배재고 미술교사 시절 가르쳤던 조각가 윤효중이 있다. 김복진은 유작(遺作)이 거의 없는 데다 사회주의운동 경력 등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으나, 1993년 광복절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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