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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대한민국 제1호] 인천항 개항 뒤에 세운 3층짜리 大佛호텔

by 까망잉크 2011. 1. 21.

 

 [대한민국 제1호] 인천항 개항 뒤에 세운 3층짜리 大佛호텔

근대적인 숙박시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 부산·원산·인천항이 개항되면서다. 1888년에 일본인 호리 리키타로씨가 인천 중구에 3층짜리 벽돌 양옥 '대불(大佛)호텔'을 지었다. 서양식 침실과 식당을 갖췄다고 한다. 당시 인천항을 통해 서울에 드나들던 유럽·미국인들이 주로 묵었다. 대불호텔 길 건너에서 상점을 하던 청나라 사람 이태(怡泰)가 대불호텔을 보고 자기 건물 2층에 '스튜어드(Steward)호텔'을 개업했다고 했을 정도로 영업은 잘됐다고 한다. 그러나 1899년 경인선 개설과 함께 불황을 타기 시작해 1918년 중국인에게 넘어가 '중화루'란 요릿집으로 간판이 바뀌었고, 1978년 6월에는 건물이 헐려 지금은 식당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대불(大佛)호텔'

1902년 독일 여성 손탁(Sontag)이 서울 정동에 세운 '손탁호텔'은 서울에 등장한 최초의 호텔이다. 주한 러시아공사 웨베르의 처제인 손탁은 조선 왕실과 친해 고종이 1895년 경운궁(慶運宮) 건너편에 있는 땅을 손탁에게 하사했다. 손탁은 1902년 10월 옛집을 헐고 2층짜리 서양식 건물을 지어 2층은 객실, 1층은 객실과 식당으로 사용했다. 1904년 3월과 1905년 11월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일전쟁 때는 영국 총리가 되는 처칠(Churchill)이 묵기도 했다. 1917년 이화학당이 이 건물을 사들여 강의실, 기숙사 등으로 쓰다가 1922년 건물을 헐고 3층짜리 프라이 홀(Frey Hall)을 세웠다.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호텔은 1914년 조선총독부 산하 철도국이 서울 소공동에 건립한 '조선호텔', 현재의 웨스틴조선호텔이다. 독일 건축가 궤데란트의 설계로 약 1920㎡(580평) 건평에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지어졌다. 52개의 객실과 한식당·양식당·커피숍·로비라운지·바·댄스홀·도서실을 갖췄고, 엘리베이터(일명 수직열차), 아이스크림, 뷔페식사, 댄스파티, 서구식 결혼식 등 신문화 도입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광복 후 소유권도 교통부로 넘어갔다가 1983년 민영화되었다. 1992년에는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신세계가 조선호텔 주식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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