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날이다.
보름날 아침 누구야 하고 먼저 부르면 내 더위하고 외쳤던 일이 생각난다. 요즈음이야 선풍기 있고 에어
콘 있고 하니 더위야 쉽게 피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부채아니면 냉수 한 그릇에 더위 피하고 등목하면
만사 오케이였던 시절이 오히려 향수에 젖는다.
오늘저녁 오곡밥이 전달되어 오곡밥의 유래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오곡밥을 대보름 전날에 먹는 풍습은 신라시대 신라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날 경주 남산 기슭의 천천정
(天泉亭)이라는 정자로 행차를 하던 중 갑자기 까마귀가 날아와서 봉투 하나를 떨어뜨리고 날아갔다. 신
하들이 주워서 봤더니 겉면에 이것을 뜯어보면 2명이 죽고 안보면 1명이 죽는다고 씌어 있었다. 이 글을
보고 한참 고민하다가 한명은 왕을 일컫는 것이라고 주장해서 열어보았더니 당장 궁전으로 돌아가서
내전 별방에 있는 금갑을 쏘시오 라고 씌어 있었다.
그래서 바로 궁으로 돌아가서 금갑에 대고 활을 쏘았더니 왕비와 한 신하가 나왔다 다고 한다. 심문을
했더니 둘이서 역모를 꾀하는 중 이였다는 것이 아닌가? 왕은 둘을 처형하고 목숨을 사려준 까마귀에 고
다는 뜻으로 매년 1월15일 까마귀 제삿날(烏忌日) 로 정하고 귀한 재료를 넣은 검은 밥, 즉 약밥을 지어
서 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궁중에서는 잣,대추,밤 등 귀한 음식을 넣어 약밥을 지어먹었으나 서민들은
구하기 어려워 오곡밥으로 대신해서 지어 먹었다
오곡밥은 오색곡식이 우리 몸의 오장을 보호한다고 여겨 왔으며 찹쌀은 폐를 기장(차조)은 위장을 검정
콩은 신장을 빨간 팥은 심장을 붉은색 수수는 우리 몸의 잡귀를 몰아내기 위하여 넣었고 오곡밥에는 꼭
9가지 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되어있다. 그 이유는 나물의 녹색이 우리 몸의 간장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해오는 모든 음식에 반찬을 무엇과 먹으라는 기록은 거의 없으나 오곡밥에는 꼭 9가지나물을 곁들어
먹으라는 기록이 바로 이런 이유라고 한다.
옛부터 오곡밥은 삼(三) 성씨이상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하는 유래가 최소한 셋 씨족 이상은 화합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 이였다.
우리나라 역사에 최초에 오곡밥을 드신 임금님은 세종대왕이라고 한다. 임금님이 밤에 민심을 살피시려
고 궐 밖에 나가 셨는 데 백성이 먹는 밥이 이상하여 직접 드셔보시고 그 밥이 별미라서 입궐 후 신하에
게 그 밥을 드시겠다고 하시어 대신들이 모여 회의 하던 중 의관이 당연히 오장의 원기를 돋우는 오곡밥
을 드셔야 한다고 하여 오곡밥이 생겨났고 이 때부터 오곡밥의 처방(배합비율)이 지금의 오곡밥으로 전
해 내려오게 되었다.
또 정월 대보름날의 그 밖의 풍습은 아침에 귀가 밝아진다는 귀 밝이 술(耳明酒) 새벽에 부럼(땅콩,호두
등)을 까서 이를 튼튼하게하고 종기를 예방한다는 것과 놀이로는 놋다리 밟기,다리밟기,쥐불놀이 작년
대보름날에는 우리 아파트에서도 달집태우기, 쥐불놀이를 한 기억이 있다.
<옮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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