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가지가 왜 성글까
[오늘 본 옛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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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 하늘 아래 수평선 너머로 돛배는 멀어져 간다. 바다는 푸르러도 물결은 뒤척이지 않는다.
어느새 날아왔나, 조각배 위에 날개 접은 해오라기 한 마리. 떠나는 돛배를 망연히 바라본다.
버들가지 머리 푼 봄날, 화가는 그리고 나서 썼다. ‘버드나무 고요한 갯가에 해오라기가 배를 지키네.’
18세기 화원 석당 이유신이 묘사한 바닷가 풍정은 적적하다. 칼로 자르듯이 그어놓은 수평선은 심심하고,
거리감을 무시한 채 큼직하게 그린 돛은 어설프다. 설익었지만 근경은 그나마 흥취가 살아있다.
재빠르게 붓질한 버들 둥치, 숱이 듬성한 잔가지, 텅 빈 뱃전에 옹크리고 선 해오라기가 자칫
밋밋하게 보일 화면에 리듬감을 안겨준다.
나긋나긋한 봄버들은 흔히 여성에 비유된다. 유순하고 섬약한 모양새는
당나라 시와 송나라 그림이 즐기는 소재다. 시인 백거이는 노래 잘하는 기녀 번소의 입을 앵두로,
춤 잘 추는 기녀 소만의 허리를 버들로 표현했다. ‘소만요(小蠻腰)’는 그래서 버들가지의 애칭이다.
버들을 꺾으면 애달프다. ‘절양(折楊)’은 이별을 뜻한다.
조선 기생 홍랑은 떠나는 임에게 멧버들을 꺾어주며
‘봄비에 새 잎이 나거든 날처럼 여겨달라’고 애원했다.
예부터 임 보내는 포구에 버들잎은 남아나지 못했다.
한 시인은
‘잘리고 꺾여 버들이 몸살인데
이별은 어찌하여 끊이질 않는가’라고 읊었다.
다시 그림을 보니, 천만사 휘늘어져야 마땅할 버들가지가 애처로이 성글다.
임 실은 배는 떠나가는데 해오라기 홀로 누구를 대신해 전송하는가.
바닷물인들 마를까, 이별의 눈물 해마다 흥건한데.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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