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중앙일보 입력 2011.10.10 00:16 / 수정 2011.10.10 00:16
왕버들 Salix grandulosa
나무와 하늘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1931~)
빗속에서 소요하던 한 그루의 나무,
우리를 지나쳐 쏟아지는 잿빛 속으로 질주한다.
과수원의 찌르레기처럼 나무는
빗속에서 생명을 갈무리해야 한다.
빗줄기 잦아들자 나무도 걸음을 멈춘다.
맑은 밤 깊은 적막 속의 천지에
눈꽃 피어나는 순간을 고대하는 우리처럼
나무는 고요히 기다린다.
뭇 생명이 노동의 수고를 갈무리하는 계절이다. 비바람 눈보라 맞으며 천년 세월의 숲을 걸어 나온 나무도 한해살이를 마무리하기 위해 걸음을 재우친다. 기우듬히 뻗친 벌판의 왕버들 나무 줄기가 잠시 숨을 멈추자 천지가 고요해진다. 잿빛 적막이 내려 앉은 사람의 마을에서 나무가 한 줄기 생명의 고동을 길어 올린다. 늙은 왕버들 줄기를 감도는 생명의 기운이 우렁차다. 올해 노벨문학상으로 다가온 스웨덴의 ‘말똥가리 시인’에게도 생명의 기운이 살아 오르기를 바라야겠다. 병마를 이겨내고 그가 노래해야 할 더 많은 나무가 우리 앞에 있는 까닭이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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