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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백송

by 까망잉크 2011. 12. 28.

 

 

 [시가 있는 아침] 백송

[중앙일보] 입력 2011.12.26 00:54 / 수정 2011.12.26 00:54

 백송 Pinus bungeana

 

 

백송 / 조용미(1962~ )


껍질을 다 털어내면 하늘로 솟을까 두렵다

햇빛에 빛나는, 비늘을 드문드문 털어낸

흰 가지들

(……)

白骨松,

저 나무의 뿌리 하나는 이 지구의 핵에 닿아 있다

껍질 다 벗겨져 눈이 부셔도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을 것이다

밤이면 백송을 좌표 삼아 주위를 도는 별들이 있다

혼불이 있다

네 몸의 비늘도 다 떼어내고 나면

극점에 이를 수 있겠느냐

날아가지 않는 힘으로 붕새는

백송이 되었다

그 날개로 하늘을 다 가리고도 남는 백송이 되었다


시인이 경기도 이천 신대리 백송 줄기의 속살에 밴 울음소리와 마주했다. 천연기념물 제253호의 상서로운 나무다. 마을 뒷동산에 홀로 서 있는 나무의 줄기는 하얗다. 그래서 백송(白松)이다. 흰 표면의 회색 얼룩에는 천 년의 신비가 감돈다. 긴 세월 동안 백송을 축으로 낮에는 태양이, 밤에는 별들이 돌고 또 돌았다. 뿌리는 지구의 핵에 닿았고, 가지는 해의 길(途), 잎은 별의 나침반 됐다. 해와 달과 별의 좌표였기에 백송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다. 햇살과 별빛이 지은 혼불이다. 줄기 비늘이 떨어지고 얼룩 껍질 벗겨져도 나무는 끝내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을 게다. 미동도 없이 온 하늘을 덮는 백송의 춤이다.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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