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물(기생 월이의 활약)★
임지왜란이 이순신장군과 기생 월이의 활약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할 뜻을 품었던 왜군은 남해안 지형을 사전 조사하기 위해
승려로 가장한 첩자를 조선으로 보냅니다.
승려로 가장한 첩자를 조선으로 보냅니다.
몇 달간의 조사 끝에 지도가 완성되자 첩자는 조금 쉬어가고자 고성의 옛 무학동 무기정
기생집에 들렀는데요.
기생집에 들렀는데요.
그곳에는 기생 월이가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월이의 품에서 잠이 든 첩자와 그의 가슴팍에서 비단보를 발견한 월이, 그녀는
남자가 일본의 첩자임을 눈치챕니다.
술에 취해 월이의 품에서 잠이 든 첩자와 그의 가슴팍에서 비단보를 발견한 월이, 그녀는
남자가 일본의 첩자임을 눈치챕니다.
'비록 기생의 몸이지만 내가 태어난 조국이요. 부모의 얼이 묻혀 있는 곳이 아닌가?'
첩자를 그대로 보낼 수 없었던 월이는 그를 유혹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자가 잠든 사이 그가 사용하던 붓을 찾아 든 월이는 당항만이 바다로 이어진 것처럼
정교하게 가짜 길을 그려넣죠.
정교하게 가짜 길을 그려넣죠.
▲ 월이가 그려넣은 뱃길
시간이 흘러 임진년 6월5일,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당항포에서 충무공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전투를 벌입니다.
수군과 전투를 벌입니다.
이순신의 뛰어난 전략에 밀린 일본군은 바다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지도에 표시된 바닷길을
찾을 수 없었죠.
찾을 수 없었죠.
월이가 그린 가짜 바닷길이였으니까요.
퇴로가 막힌 일본군은 결국 전멸합니다.
월이가 그린 지도를 따라 간 왜장은 '속았다'며 분개 했고 당항포 앞바다는 속은 갯가라는 뜻의
'속싯개'라는 지명이 붙었습니다.
'속싯개'라는 지명이 붙었습니다.
당시 왜선은 산산조각이 났고 물 위에 떠오른 왜적의 머리 수백 두가 썰물에 밀려 소포쪽으로
밀려올 정도였다네요.
밀려올 정도였다네요.
안타깝게도 당항포 대첩 승리의 숨은 공신이었던 월이는 지상으로 공격해 온 왜군에게 붙잡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논개에 가렸던 월이의 충절은 420여 년이 지나서야 고성 향토시인이자 작가인 정해룡 선생에
의해 재조명됩니다.
의해 재조명됩니다.
"논개는 적장 하나만 안고 죽었으나 월이는 왜적의 함대 26척과 3천여 명의 적 수군을 대파한
일등 공신이다"
일등 공신이다"
고성군은 월이 이야기를 담은 고증자료,
소개글 그리고 8분여 분짜리 영상물까지 별도 제작해 당항포관광지 내 전승기념관을 꾸몄습니다.
소개글 그리고 8분여 분짜리 영상물까지 별도 제작해 당항포관광지 내 전승기념관을 꾸몄습니다.
기생 월이의 이야기는 아직 역사적 고증이 더 필요한 부분이고 설화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월이의 존재를 알리고 연구하며 고증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만큼
우리도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네요.^^
우리도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네요.^^
출처 : 우소인~
글쓴이 : 야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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