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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49)버릇<하>

by 까망잉크 2018. 11. 19.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49)버릇<하>

 
 

촌사람 쌈짓돈 따먹던 야바위꾼 감천변 대장간 대장장이로 일하며

장날이면 양반집 도령차림으로 인파 속을 헤매고 다니는데…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열두살 간 큰 녀석이 경북 김천 장날마다 야바위판을 벌여 어리숙한 촌사람들의 쌈짓돈을 훔쳐 먹다가 고수를 만나 딴 돈을 다 털리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3년이 지나 그 녀석은 열다섯이 됐고 감천변 대장간의 대장장이가 돼 나타났다. 오 도령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평소엔 대장간에서 일하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장날만 되면 목간을 말끔하게 하고 양반집 도련님처럼 금박을 입힌 곤색 복건에 전복을 입고 금사 허리띠를 졸라맨 채 달덩이 같은 얼굴로 장터를 누비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천석꾼집 막냇손자, 서당의 학동이다.

대장간 영감님과 삼촌은 장날이 되면 대장간 문을 닫고, 만든 철물연장을 장에 지고 나와 멍석 위에 펼쳐놓았다. 하지만 오 도령은 장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새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튿날부터 대장간은 또 벌건 석탄 백탄이 들어간 화덕에 파란 불꽃이 솟고 꽝꽝 땡땡 망치질이 오갔다. 오 도령은 걸레 같은 옷을 걸치고 풀무질에 매달렸다.

대장장이들이 막걸리 새참을 하거나 저녁나절 일을 마치고 화덕이 빌 때면 오 도령은 집게로 조그만 쇳조각을 달궈 쇠망치로 두드리다가 담금질을 하고 다시 달구길 반복했다. 어떤 때는 쇳조각을 숫돌에 갈았다. “오 도령님, 무엇을 그리 골똘히 연마하십니까요?” 삼촌이 농을 걸어오면 오 도령은 얼른 손톱만 한 쇳조각을 감춰버렸다.

닷새 만에 또 장날이 돌아왔다. 오 도령은 어김없이 양반집 손자처럼 복건을 쓰고 전복을 입은 채 장터를 헤매는 것이다. 장옷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부잣집 안방마님이 틀림없는 어느 귀부인 곁에 오 도령이 바짝 붙어 가고 있는데 오 도령의 허리띠를 누군가 뒤에서 당겼다. 뒤돌아본 오 도령은 사색이 돼 손아귀 속 참새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허리띠를 당긴 사람은 3년 전 야바위판을 압도한 바로 그 젊은이였다.

허리띠를 잡은 그에게 이끌려 인파 속을 나오다가 허리띠를 풀어버리고 도망쳤지만 열걸음도 못 가 다시 뒷덜미를 잡혔다. 오 도령은 “으악” 소리쳤다. 그 젊은이는 머리를 박박 밀고 염주를 걸고 승복을 입었다. 그런데 소매 밖으로 나온 두 손이 쇠갈고리인 것이다. 오 도령은 그에게 이끌려 아무도 없는 물레방앗간 뒤 느티나무 아래에 갔다.

오 도령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여기로 끌고 온 거예요?” 젊은 중이 빙긋이 웃더니 오 도령의 전복을 확 벗기고 조끼주머니에서 호박노리개, 작은 돈주머니, 옥단추, 엽전 등을 끄집어냈다. 그러고 소매 끝에 감춰둔 손톱만 한 칼을 뽑아냈다. “네놈은 소매치기야. 이 호박노리개도 방금 그 귀부인한테서 훔쳤잖아!” 오 도령은 벌벌 떨었다. “대장간에서 좋은 쇳조각을 구해 작은 칼을 만들어 소매 속에 감춰 다니면서 남의 옷과 주머니를 감쪽같이 잘라 돈과 귀중품을 훔쳐내는 쓰리꾼!”

오 도령은 젊은 스님 앞에 꿇어앉았다. “네놈이 복건에 전복을 입은 것은 위장이지. 설마 양반집 손자가 쓰리꾼일 리가!”

“스님,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오 도령은 눈물을 쏟으며 두 손 모아 싹싹 빌었다. “3년 전 네놈이 야바위를 할 때도 그랬지. 이 세상에서 네 놈 손이 가장 빠른 것 같지만, 아니야.” 젊은 중은 두 팔을 쳐들었다.

두 손은 손목에서 잘려나가고 양손엔 모두 쇠갈퀴가 귀신 팔처럼 흉물스레 이어져 있었다. “내가 네 사업을 계속 막은 것은 나처럼 되지 말라는 뜻에서야. 나는 신출귀몰한 도둑이었다. 네가 야바위판을 벌였을 때만 해도 평생 잡히지 않을 것 같더니 결국 잡혀서 한쪽 손이 잘렸고, 그 버릇을 못 고쳐 또 도둑질을 하다가 두 손을 잃게 됐어.”

두사람은 조실부모하고 어린 나이에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온 게 판에 박은 듯이 비슷했다. 오 도령은 쇠갈고리 손 젊은 중을 따라 직지사로 들어가 사미승이 됐다.

사월초파일, 일주문 옆 돗자리 위에 분실물들이 펼쳐졌다. 신도들이 절을 떠날 때 제 물건을 찾아가며 깜짝깜짝 놀랐다.

쇠갈고리 스님은 알고 있었다. 사미승 오 도령이 손재주를 부렸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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